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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감상문

울, 반전의 재미가 살아있는 디스토피아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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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SF소설이나 판타지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뭐랄까......인간의 심리에 대한 섬세한 맛이 떨어지고, 흥미위주의 스토리 전개가 대부분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사실 '울(Wool)'이라는 소설은 충동구매한 책인데 생각보다 꽤 재밌게 읽었다. 만약 나와 비슷한 독서성향을 가진 분들이 있어도 크게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스포일러 없음)




 

 



이 소설의 시간적배경은 알수가 없다. 다만, 인류가 종말된 세상이라는 것. 사일로라고 불리는 144층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지하세계가 공간적배경이라는 정도다. 지하세계에 산다는 것은 바깥 세상이 어떤 상태인지 짐작할 수가 있다. 지하세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상상해해보라. 밖으로 나갈 수 없이 거대하다고는 하나 한정된 공간에 머물러 사는 인간들의 모습을. 아래 북트레일러 먼저 감상해보자.





 줄거리를 말할 수 없는 이유




근데 사실 저건 빵점짜리 홍보 동영상이다. 책과 다른 부분이 3가지나 발견된다.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는 지하세계를 대표하는 구조물이 있는데, 그게 '나선형계단'이다. 하지만 영상에는 전혀 그런 것이 없고, 있을만한 장소도 안보인다. 두번째, 소설에서 느껴지는 사일로의 분위기는 좀 더 어둡고, 낡은 느낌이지만 영상에서는 너무 밝고 세련되게 나왔다. 마치 우주선같다. 세번째가 제일 중요한데, 사일로는 1층이 가장 꼭대기에 있다. 그러나 영상에 보이는 층수 표시대로라면 1층은 맨 아래층이 된다. 특히 이부분은 꼭 기억을 해둬야 소설을 읽을때 혼동이 생기지 않는다. 책과 멀리사는 한국인들을 유혹하기 위해 만든 동영상이라면 최소한 책을 읽어보고 제작했으면 좋겠다. 그게 상식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책이든 영화든 미리 알면 재미가 반감될 수 있는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다는 것이 나의 리뷰 원칙이다. 그래서 사실 이 소설은 줄거리 쓰기가 좀 애매하다. 의의성이 강조된 작품이다 보니 내용적으로 드러내놓고 말할수 있는 부분이 너무 제한적인 것이다. 줄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줄리엣이 주인공이라는 것과 사일로의 비밀을 감추는 권력자와 대결을 펼치는 내용이라는 것 정도만 말할 수 있다.





 소설 '울'에서 재확인 된 '소설쓰기 방법론'





대신에 이 책을 읽으면서 '소설쓰기의 방법론'에 대한 한 부분을 말해보려 한다. 소설쓰기에 대한 수많은 책들이 존재한다. 나 역시 그런 종류의 책들을 적지 않게 읽었다. 그러나 어느것 하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지 못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나조차 어디가 가려운 곳인지 알지 못했다. '울'을 읽고 그런 생각은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나에게 '울'은 '플롯의 무용론'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을 안겨 준 소설이다. 소설쓰기에 관심있는 사람치고 '플롯'에 대한 고민을 안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플롯'은 쉽게 말하면 '이야기의 뼈대'와 같은 것이다. 사건의 인과 관계에 따라 중요 내용을 미리 배치해두는 것인데......'울'을 읽어보면 이건 '플롯'부터 출발한 작품이 절대 아닐 것 같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미 읽어봤던 내가 '울의 플롯'을 작성해 놓고 읽어봤다면 무척 황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플롯' 부터 작가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면 그건 소설로 쓰여지기 어려운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플롯의 무용론'에 동조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플롯'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글을 써내려가는 속도와 심리적 안정감에서 큰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완성도는 독자에게 내놓기 전에는 알수 없는 것이고 말이다. '플롯'을 촘촘하게 하면 될 것 같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는 인위적인 느낌을 쓰는 순간에는 발견하기 힘들다. 나중에 전부 뒤엎을 각오를 해야한다.  최근에 읽은  정유정의 <28>이 딱 그랬다. 인물, 사건, 스토리가 '글로서' 논리적 개연성은 충분했지만 뭔가 부자연스러웠고, 도식적인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울' 탄생부터 영화화까지




'울'의 탄생을 잠깐 살펴보자. 작가 휴하위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났다. 10년 동안 배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소설가가 되기 위해 선원 생활을 그만두었다. 이 후 서점에서 일을 하면서 몇 권을 소설을 발표했지만 큰 인기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2011년 7월에 자비로 '울'이라는 단편소설을 전자책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판매가는 단돈 1달러. 몇 개월 후 '울'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아마존 킨들사이트에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사람들은 후속 이야기를 써달라고 난리가 났다. 결국 휴하위는 총 5부로 구성된 완성본을 내놓는다. '울'은 전자책과 종이책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 <에일리언>, <글래디에이터>, <한니발>, <프로메테우스> 등의 감독 리들리스콧이 영화화를 전격 결정한다. 리들리스콧이 누구인가. 헐리우드 오락영화의 대부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아닌가!  이정도면 거의 신드롬수준이다. 또한 전자책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에 부족한 점이 있다. 번역이다. 읽기에 큰 불편은 없지만 흐름이 자주 끊기는 일이 발생한다.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다. 물론 작가의 문체가 '장문이면서 비유 및 은유법이 사용된 복문'을 종종 사용하는 습관때문에 생긴 문제이긴하다. 원본에 충실한 것은 좋지만 한국 독자를 배려하는 번역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은 재밌는 소설이다. 자극적이거나 야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누구라도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정말 배아픈 것이 있다. 이런 일은 미국같은 나라에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우리에게도 아주 오래전 이우혁의 <퇴마록>이 있었다. PC통신 시절의 글이 영화, 소설로 크게 성공했고 그건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듯 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이제는 없다. 현재는 유명 작가의 인기소설이 영화화 될 뿐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인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소설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적다. 그러니 글을 쓰는 사람들도 적어지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생활이 불가능한데 누가 글을 쓰겠는가. 미국인들은 한달 평균 6.6권을 읽는다고 한다. 우리는 1권도 읽지 않는다. 이런 나라의 미래가 어떨지 상상하면 끔찍하다.



또 장르에 대한 편견이 매우 심각하다. 순수소설 외에는 3류로 취급하는 한국 문학계의 거만함이다. 왜 한국 작가중에는 미래소설, 공포소설, 추리소설을 쓰는 사람이 없는가. 저런 소설을 쓰는 외국작가에게는 열광하면서 왜 한국에서는 장르소설을 지원하는 공모전하나 변변하게 없는가. 그저 답답할뿐이다.


문학의 다양성 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오늘도 창의적인 이야기를 쓰느라 추운방에서 머리털을 쥐어뜯는 수많은 아마추어 작가들의 선전을 기원한다. '울'이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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