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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감상문

공지영이 묻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언제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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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하 우행시)'는 처음 읽은 공지영 장편소설이다. 너무나 알려진 작가의 소설이라서 오히려 미루다가 이제야 첫인사를 한 것이다. 왜 그런 것 있잖나. 백화점에서 아줌마들이 우루루 몰려다니며 브랜드 기획특가상품 싹쓸이 하는 거. 그들 중 한명이 되는 기분이 들어서 잠시 뜸을 들였던 건데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린 것이다. 근데 이 소설, 울컥하게 만든다. 내가 책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이게 그 첫번째 소설이 될 뻔 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10점
공지영 지음/오픈하우스





 우행시 줄거리


엘리트 집안의 골치덩어리, 문제아, 낙오자로 낙인 찍힌 막내딸 문유정. 세번째 자살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정신치료를 다시 시작해야 할 판이다. 그녀는 죽지 못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삶에서 어떤 의미도 목적도 이유도 알수 없었다. 껍데기뿐인 인생. 유정은 병원치료대신 수녀로  살고 있는 모니카 고모의 요청을 허락한다. 교도소에서 사형수들을 함께 만나는 것이다.


▲ 송해성 감독의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포스터 [보기]


정윤수는 살인 및 강간범이다. 법원에서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 받아 죽을 날만을 기다린다. 윤수가 어렸을 때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윤수와 그 동생 은수를 학대하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친다. 고아원을 전전하다 커서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도둑질을 하며 보낸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생존을 해결해주었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긴다. 사랑을 받아 본 적도 누구를 사랑해 본 적도 없는 형제들에게 그 곳이 보금자리였고 피난처였던 것이다.


유정과 윤수가 만났다. 모니카 고모와 유정은 매주 목요일 3시간 동안 윤수의 교화를 목적으로 모이는 것이다. 윤수는 그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조소를 보내며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사람의 정이 그리웠던 것일까. 면회를 오면 귀찮아 하면서도 그들과 마주 앉는다. 유정은 윤수가 저지른 범죄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경악을 했었다. 그러나 고모와 한 약속 때문에 목요일 마다 방문을 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유정은 윤수가 자신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두 사람은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면서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진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우행시가 묻는다. 가족이란?





'우행시'는 현대인들에게 정말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내용에서 억지로 뽑아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잔잔하게 다가오지만 아픈 곳곳을 찌르는 듯한 예리함이 있다. 우행시의 힘은 그것들이 원천일 것이다. 신파 스토리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세상사 신파아닌 것이 어디있겠나. 배고픈 아이에게 떡주는 심정이야 단순할 수 있지만 그 '떡'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 사회의 구조적 문제까지 제대로 끄집어 냈다면 그건 이미 보통 '떡'이 아닌 것이다.


우행시가 던지는 수 많은 질문 중 핵심 질문은 '가족'이다. 이 소설이 '유정과 윤수의 관계'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족'이라는 키워드가 거대한 우주처럼 모든 사람들을 감싸고 있다. '가족'의 의미를 사람들의 관계 속에 적절히 녹여내어서 크게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고함과 비명과 채찍과 혼돈 그리고 저주를 일상의 양식으로 삼아, 파멸 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한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비참할 리가 없다고 믿었던 한 비참한 인간의 이야기, 바로 저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 page 11 윤수의 '블루노트' 중에서


모니카 고모와 나는 우리 집안의 이방인들이었다. 이단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사생아라고 해야 옳을까? 

- page 21


집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이방인, 이단, 사생아라고 규정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자기멸시'다. 자기멸시를 하는 사람에게 행복은 언제나 남의 '떡'이다. 자기멸시자는 타인의 고통도 자기 탓으로 여긴다. 자기멸시자는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고 싶지만 잡아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진실은, 자기멸시란 살고 싶다는 또다른 비명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비명을 들어주지 않는다. 꾀병이고 칭얼거림으로 여기며 오히려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비명이 끝나는 곳은 죽음뿐이다. 유정이가 계속 죽으려고 하는 것 처럼.





 우행시가 묻는다. 죽음이란?



많은 철학자들이 '죽음'에 대해 철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그러나 살아있는 상태에서 '죽음'을 논하는 것은 형이상학적이다. 모두가 '죽음'을 경험하지만, 아무도 그 경험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죽음이 진정 삶의 끝인가라는 질문부터 개인의 죽음과 사회적인 죽음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생물학적 죽음과 인식론적인 죽음도 다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살아있으나 죽은 것 처럼 보이는 사람들. 그럼 그들은 살아있는 것일까, 죽어있는 것일까.


내 인생의 첫 기억은 그런 살의로 시작됩니다.

- page 20 윤수의 '블루노트' 중에서


그 죽음의 열차라는 것을 타고 싶다고 생각하고 나면, 세상의 가치들이 모두 헤쳐 모여, 했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중요해지지 않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중요해졌다. 죽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왜곡된 것도 많았지만 제대로 보이는 것 또한 많았다. 죽음은 이 세상의 가치 중에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있는 모든 소유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돈, 돈, 돈 하면서 돌아버린 이 세상에서 그것을 비웃을 수 있는 어쩌면 가장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고, 누구나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 page 228


우행시에는 죽음에 대한 언급이나 관련 이야기가 생각보다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이 인간다운 삶을 거의 포기한 자살기도자라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죽음' 역시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소설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인정하고 사는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은 인생의 궤적이 달라진다. 윤수와 유정은 같은 심리상태를 가진 남녀다. 죽고 싶지만 사실은 살고 싶은 것이고, 살아있지만 죽은 것 같아서 고통스러운 상태. 죽여 달라는 윤수와 죽고 싶은 유정은 일찍 자신의 삶에 '죽음'을 받아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그들에게 '살아야하는' 진짜 이유를 깨닫게 했다.


사형제도는 어떠한가. 그것은 아직도 찬반논란이 많지만 세계적인 흐름은 '사형제도 반대'쪽으로 흐르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법'이란 권력자들의 지배구조를 견고하게 받쳐주는 장치로 이용되어 왔다. 그래서 사형으로 죽어가는 범죄자는 줄어들었으나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또다른 죽음'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많다. 그 사이에 정의는 구호로 끝나버리고 형식적 담론과 합의만이 공허하게 울릴 뿐이다. 그래서 '죽음'이란 명사가 아닌 '동사형'으로서 삶 속에 끝없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죽이지 않았지만 실상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윤수와 유정이란 이름으로 대표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생물학적인 살인자만 벌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법이 사람을 죽이든, 사회구조나 살인마가 사람을 죽이든 '죽음'의 본질적인 차이점이 대체 뭐냐는 것이다.



이 소설을 4년~5년 준비하면서 공지영은 사형수과 잦은 만남을 가졌다. 공지영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는 일 뿐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항상 울었다. 사형수들이 내기를 했단다. 과연 그녀가  언제까지 우는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공지영이 가장 애착이 가는 소설이라고 했다. 그녀에게 '윤수와 유정의 이야기'는 단순히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 선함, 희망 등을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중고생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사람과 사회 그리고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폭넓은 시야를 갖게 해줄 좋은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진정으로 참회하고 새로 태어난 사람들, 삶과 상처를 딛고 차마, 아무도 하지 못하는 용서를 하려는 사람들... 그분들과 함께 나는 감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나를 많이도 울렸으며, 인간에게는 누구나 공통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며 실은, 다정한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것, 그 이외의 것은 모두가 분노로 뒤틀린 소음에 불과하다는 것, 그게 진짜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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