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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감상문

살육에 이르는 병, 충격 반전의 19금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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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허풍이 없다. 오해마라. 이 책의 광고에 나온 말이 사실이라는 의미이니까. '살육에 이르는 병'을 읽은 10명 중 9명은 마지막 장에서 머리가 멍해질 것이다. 황당함이 아니라 '진짜 속았다!'라는 느낌때문이다. 19금이 아니라 25금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으면서도 기기막힌 트릭을 사용한 이 추리소설에 박수를 보낸다. 이 강렬한 느낌은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 이 느낌을 여러분에게도 전달하고 싶다. (스포일러 없음)




살육에 이르는 병 - 10점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시공사



사실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추리를 하면서' 읽는 추리소설이 얼마나 될까. 내가 이쪽 장르를 유독 많이 읽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책장사 하는 사람들에게 한두번  속아봤나.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주 황당하게 결말이 나나?' 솔직히 내 기억에 '머리'까지 써가면서 읽었던 추리소설은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때 읽었던 셜록홈즈 시리즈나 아가사크리스티 작품들에서 몇 권정도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그 역시 추측일 뿐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이 소설을 손에 들고 다짐했다. '나를 속이기는 쉽지 않을걸~'이라고 말이다. 평소 PC게임도 퍼즐형 어드벤쳐 게임을 좋아하고 어릴 때부터 범인찾기 같은 문제풀이 놀이를 하면서 커왔던 나였기 때문이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엄마 마사코는 아들의 행동이 언제부터 인가 달라졌다고 느낀다. 혼자 방에 틀여박혀 있는 시간이 많고 대화도 줄었다.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는다. 마사코는 뭐가 불안한 낌새를 느낀다. 여자의 직감이라고나 할까. 그러던 어느날 끔찍한 살인사건 소식을 TV뉴스로 보게 된다. 이후 연쇄적으로 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 이상하게 아들이 집을 비운 시간과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마사코는 두려움에 떨지만 자신의 아들은 절대로 살인자가 아닐 것이라고 학습이라도 하는 것처럼 되뇌인다. 그러다가 아들의 방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하며 공포에 휩싸인다.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마사코는 아들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기 위해 몰래 미행을 하는데....





이 소설에는 매우 잔혹한 묘사가 나온다. 신체 절단과 훼손 장면인데 영화로 치면 '고어 영화' 수준이다. 그런 장르를 종종 보는 사람들이라면 글로 표현된 것이 크게 다가오지는 않을 수 있지만, 독자가 여자라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다. 남자들 중에도 고어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나 역시 공포영화는 좋아해도 '고어물' 은 안본지 한참 됐다. 왜냐하면 그런 영화도 일종의 '하드코어 포르노'로 볼수 있기 때문이다. 역겨운 것이다. 결말의 충격을 맛보기 위해 과감하게 이 소설책을 펼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자신이 정말 심약한 여자라고 생각하면 책읽기를 포기했으면 좋겠다.


[관련 도서] 노벨문학상후보 미국 여류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의 '좀비'





내가 지금부터 예언을 하겠다. 당신이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게되면 머리속이 번쩍 할 것이다. 그리고 잠시 동안 복잡한 생각이 들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지?'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첫 페이지를 다시 펼치게 될 것이다. 이후에는 책 속 곳곳을 다시 들여다 볼 것이다. 그렇게 30분~1시간 정도가 지나면 이 소설의 치밀한 구성과 속임수에 놀라면서 웃음이 새어 나올 것이다. 어떤 사람의 리뷰가 허풍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번개에 맞은 것 같은 경악. 곧바로 한 번 더 다시 읽었습니다. 아마 이 소설을 읽은 사람 중 반 이상이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일본 아마존 독자


소설 '살육에 이르는 병'을 읽다보면 실제로 벌어진 희대의 강간 연쇄살인마들이 언급되곤 한다. 일본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미야자키사건',  영국의 살인괴물 '존레지날드크리스티', 살인 후 젖가슴을 물어뜯는 엽기살인마 캐나다의 웨인보덴 등이 그렇다. 그런 내용들이 몰입도와 완성도를 높인 것도 사실이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트릭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는 것이다.



내가 읽어 본 소설 중에 이정도 반전이 있는 소설은 없었다. 아니, 반전이 있었으나 이정도로 쇼킹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 짐작이 가능한 반전이거나 너무 비틀어서 헷갈리는 수준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살육에 이르는 병'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스토리라인을 가졌으며 중간 중간 트릭이 숨어있다. 1992년에 첫 출간을 한것 같은데 참으로 대담하고 치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딘가 이상한 느낌을 받기는 했었다. 근데 그냥 번역의 문제로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 '이상한' 느낌이 진짜 살인범을 암시하는 결정적 힌트였는지 알수가 없다. 다만 이런 스타일의 책을 더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강렬하게 생겼다. 이것과 비슷한 몇 권의 소설을 구매할 예정이다.



소설을 읽고 난 영향때문인지 나는 사람이 조금 더 무서워졌다. 대한민국은 경제적 문제로 예전만큼 밤길을 편하게 다닐 수도 없고, 모르는 사람의 친절을 함부로 믿을 수도 없게 변해버렸다. 남자도 밤길을 조심해야 하는 세상이다.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많은 사이코패스가 걸어다닌다는 글을 본적이 있다. 모든 사이코패스가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지만 '잠재적 범죄자'라는 사실만으로도 공포스러운 것이다. 아,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지 호러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소설에 등장하는 사실적이고 노골적인 묘사가 상당히 으시시한 기분을 주기도 해서 여러면으로 만족(?)스러운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띠지로 인해서 결말을 먼저 볼 수가 없다. 밀봉이 되어있는 것이다. 반드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야 한다. 실수로라도 마지막 페이지를 먼저 보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조심조심 읽어보자. 만약 당신이 평소에 매우 논리적인 사고를 한다면 이 소설에 도전해보기 바란다. 물론 난 당신의 패배에 한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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