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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감상문

오두막, 힐링소설인가 하나님 홍보 책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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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혼란을 준 소설이다. 나는 내 스스로 감정이 풍부하다고 생각해왔다. 결혼을 안해서 그런지 소년같은 마음이 많은 것이다. 눈물도 많고 측은지심도 잘 생긴다. 그런데 '오두막'이라는 소설이 왜 평점이 높은지 정말 모르겠다. 나는 그 평점들의 진정성을 믿을 수가 없다. 혹시 종교적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마음이 더 강했던 건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 오래전 나였어도 그랬을테니까.




오두막 - 4점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세계사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참으로 감동이다. 여섯명의 자녀들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서 시작한 소설이라는 점이 말이다. 세상 어느 아버지가 이런 일을 현실로 옮길 수 있을까.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장난처럼 시작할 수가 결코 없는 일이다. 시작은 해도 완성은 힘들다. 완성은 할 수 있어도 완성도가 높은 소설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은 베스트셀러까지 되었다. 현재까지 700만부나 팔린 책이다. 46개국의 사람들에게 읽혀졌단다. 이건 기적이다!




 오두막의 줄거리


매켄지(이하 맥)은 간호사 낸과 결혼해서 다섯 아이를 둔 가장이다. 큰 아이 두명은 다른 일이 있어서 세아이만 데리고 호수 야영을 가기로 결심한다. 어느 나라나 아빠와 아이들은 조금 거리감이 있나보다. 특별한 설명은 없지만 맥은 아이들과 여행을 가서 대화도 하고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맥은 막내딸 미시에게 부족을 위해 희생했던 '멀노마 공주'에 대한 전설 이야기를 해주며 다정한 시간을 보낸다. 아빠에게 처음 듣는 이야기도 아닌데 그날 미시는 죽음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여러가지 질문을 한다.



맥가족은 야영지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도 좋아했지만 맥 역시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을 만끽한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으며 사는지에 대한 감사함도 들었다. 집으로 출발하기로 한 날 아침 미시를 제외한 두 아이가 마지막으로 카누를 한번 더 타보고 싶다고 말한다. 맥은 아침을 준비하며 안전수칙을 다시한번 상기시킨다. 그러나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카누가 뒤집히는 사고가 발생하고 맥은 두 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속에 뛰어든다. 그러나 안좋은일은 한번에 온다고 했던가. 간신히 아이들을 구조한 뒤 뭍에 올라오자 막내딸 미시가 사라져버렸다. 아무리 찾아도 미시가 안보이자 경찰에 실종신고를 내고 수사에 들어간다. 그러다 미시로 보이는 아이가 차에서 발버둥치는 것을 본 목격자와 연쇄살인범이 의도적으로 흘린 흔적을 발견한다. 여기저기를 수색하던 경찰은 야영장에서 멀리떨어진 어느 숲속 오두막에서 미시의 옷과 바닥에 있는 미시의 피를 발견한다. 맥은 분노와 절망에 빠지게된다. 한참 시간이 흐른 어느날 맥에게 '오두막으로 초대'한다는 우편이 전달된다. 그러나 그 곳은 미시가 살해당한 장소로 추측되는 곳이었는데......




 인간과 하나님의 대화......지루하다




이 소설의 2/3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맥의 대화로 채워졌다. 나이롱 신자이긴 해도 나역시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은 신앙인이다. 그런데 나는 감동도 깨달음도 치유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서 보여주었던 짤막한 조언들에서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나와 종교도 달랐는데 말이다!


맥, 우리 안에 있는 사랑과 즐거움과 자유와 빛을 당신과 나누고 싶어요. 우리는 당신 인간들을 우리와 얼굴을 맞대고 우리 사랑의 범위에 합류할 수 있도록 창조했어요. 당신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은 정확히 이 목적에 따라 일어났죠. 선택이나 의지를 위반하지 않은 채로요.


책의 2/3가 저런 식의 질문과 저런 식의 대답이다. 그리고 반복이고 설득이다.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게 인간인데 작가가 만들어낸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들어야 한다? 이건 아니다. 인간의 언어를 빌려 절대자가 인간과 직접 소통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재밌게 느껴졌으나 결국 하품이 나왔다. 소설은 소설스러운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많은 말보다 오히려 여백의 미 또는 역동적인 전개를 동원하는게 좋았을 것이다. 아니면 하나님, 예수, 성령이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맥과 소통하던지 말이다.





 오두막이 필요한 사람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런 생각도 든다. 지금의 내가 정말 행복해서 그들의 고통을 짐작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은 현재 매우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일 것이다. 원망과 분노, 절망, 후회를 쏟아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위안이 될지 모르겠다. 저자 '윌리엄 폴영'에게 이 소설이 완전한 허구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가족과 친구들을 따로 떼어놓고 한걸음 물러서서 내 인생만 돌아본다면 그것은 연쇄열차사고라고 할 만했다. 성폭행과 유기, 밤의 공포로 얼룩졌던 어린 시절에서부터 중독행위와 비밀스런 청소년기를 지나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중략)...수치심과 자살과 도피의 줄타기를 해왔다. 1994년 나의 열차는 탈선햇으며 결국 파국을 맞이하고 말았다.


주인공 맥의 고통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종교인이라면 의미있게 읽을 수도 있겠다.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하는 일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오래전 정말 힘들었을 때 나 역시 그랬다. 그냥 혼자 삭이면서 우울하게 지내왔다. 만약 그때 '나만의 오두막'에서 마음껏 떠들 수 있었다면 상황이 조금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어떤 소설이라도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다. 그건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특정 종교만으로 대변하는 고통과 힐링은 확실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렸다면 좀 더 대중적인 면모가 필요했다. 저자의 실제 경험과 소설적 상상력이 다른 방식으로 결합했다면 훨씬 재밌고 훌륭한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대중소설로 분류하고 싶지 않다. 종교색이 짙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쓰여진 소설이라서 그렇다. 구원자, 신, 절대자, 하나님 뭐라고 지칭하든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소통한다.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는건 불가능할 뿐만아니라 이해한다해도 전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이다. 글로써 말로써 설명하려 한다면 '성경'이나 '불경' 만큼 잘 된 것도 없지 않은가. 저자는 독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일방적으로 들려줄 것이 아니라 맥이 스스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했어야 했다. 그래야 소설이 되고, 독자의 종교와 상관없이 그들 마음 속에 뭔가를 남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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