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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애국/박정희

박근혜 아짐마. 아짐마 아빠 이야기 좀 하자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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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트는 '마이클럽'이라는 곳에서 필명이 '캡사이신'(본명 송강희)라는 40대 주부님이 올린 글입니다. 그 당시 이 시리즈는 많은 인기와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으면서, 마이클럽이란 사이트도 많이 알려지고, 정치에 관심없던 여자분들도 한번정도는 읽어봤을 만큼 이슈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이 글을 스크랩했다가 이제 오픈하는 이유는 요즘 조선일보가 기획특집으로 '기억의 정치'라는 코너를 마련했기에 저도 따라서 이 글을 오픈해 봅니다. 제가 마음 내킬때 조금씩 공개해 드리겠습니다. 대중적인 화법으로 상당히 흥미있게 작성되어서 읽는 재미도 있고, 여러가지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리즈물로서 처음부터 보시려면 '관심이애국' 카테고리 아래 '박정희' 카테고리를 확인하시면 됩니다.
 






박근혜 아짐마, 아짐마 아빠 이야기 좀 하자


 

인혁당 사건 뒷 이야기야.
이걸로 인혁당 사건 이야기는 그만할래.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걸로도 힘들고 지쳐.

사건 당시 인혁당 관련 피해자들에 대한 구명 여론이 있었어.
유신 치하의 공포 분위기 아래서 이사람들 구하자고 나서는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대
멀쩡한 사람들 엮어서 간첩 만들어서 바로 사형해버리는 아줌마 아빠잖아.
먼짓을 못하겠어.
그래도 외국인 선교사였던 조지 오글 목사와 제임스 시노트 신부가 구명운동을 시작해.
인혁당 사건이 조작된거라고 국제 사회에 알리고, 적극적인 구명운동을 벌이게 돼.
울나라 종교인들도 이사람들 좀 따라배웠으면 좋겠어.
성경책들고 신혜식이랑 송만기랑 따라다니지 말고.
어쨌든 아줌마 아빠는 인혁당 사건 관계자들 사형시켜버린 뒤에 이 외국인 신부랑 목사도 추방해버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도 인혁당 사건이 잔인한 고문을 통해 조작되었음을 알리고
사형수8명을 구명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기도회를 열어.
그러나 중앙정보부는 이들의 활동 역시 무자비하게 탄압해.

하여간 아줌마 아빠 인생은 어떻게 그렇게 한줄로 올고야?
아줌마 아빠 살아 있었으면 8명 죽인게 뭐 대수냐고 말할거야.
일제시대 생각하면 8명은 껌값이지.
아줌마 아빠가 독립군 사냥한거 다른건 모르겠고
아줌마 아빠가 여러부대 돌아다니면서 배치됐는데
한곳에서 항일전사들 토벌하러 110번 출전했다고 했지?
아줌마 아빠 쌈 열라 잘해서 승승장구 승진했다고 하니까
태극기 휘날리며 장동건만큼 했겠지?
아구
미안해라.
장동건 열받겠다.
일장기 휘날리며 박정희의 업적이라고 말을 바꿀게.
어쨌든
나가서 한번에 10명씩만 죽였어도 1100명이네.
20명 죽였으면 2200명이고.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보고 인간백정이라고 그래.
전쟁에서 사람죽이면 다 인간백정이냐고?
아니지.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당나라군사가 울나라 쳐들어와서 전쟁났냐?
멀쩡한 나라 뺐겨서 나라 되찾자고 가족 다 버리고 그 추운 만주벌판가서 독립운동 한 사람들이야.
아줌마 아빠가가 죽인 사람들이 우리나라 찾자고 싸운 사람들이라고.
이건 전쟁이 아니야.
일본의 개가 되어 자기 민족 학살한 거야.
아줌마는 늘 이상한 화법을 써.
대통령 암살한 사람들은 다 민주투사냐고 그렇게도 말하잖아.
아줌마 아빠 대통령 아니야.
어디가서 절대 그렇게 말하지마.
그 입을 #$%$^%^&해버리고 싶어지니까.

이야기가 딴데로 샜다.
아줌마 아빠는 누구집 개가 짖냐 이러면서 어쨌든 사형을 집행해버려.
사형이 집행되던 75년 4월9일 아침 문규현 신부랑 사제단이 김수환 추기경과 상의해서
시신을 명동성당내 지하 성당에 안치하기로 하고 유족들과 함께 서대문구치소 정문에서 기다렸대.
멀쩡하게 텔레비젼 보다가 잡혀가서 10개월만에 시체로 돌아오는 가족을 구치소 앞에서 기다리는거.........
이 심정을 누가 알겠어.

근데 그나마 시체도 안돌려줬어
뒤로 빼돌려서 화장해버려
어떻게 어떻게 해서 송상진씨 시신만 확보했는데, 중앙정보부가 동원한 크레인이 장의차를 강제로 끌고가버렸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문정현 신부라고 알아?
문정현 신부가 그것을 막다가 차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대
지금도 목발짚고 다닌대.
아줌마가 옆에 앉기도 싫어하는 장애인 되버린거야.

가족이 겪었던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남편들이 조작 사건에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뛰던 부인들까지
전부 중앙정보부로 연행돼.
‘구명 운동을 않겠다’ ‘내 남편은 간첩이다’라는 진술서를 쓰도록 강요받았대.
진짜 '천인공로'라는 말을 어디다 써야 할지 알거 같아.

육체적·정신적·성적 폭력에 못이겨 그런 자술서를 쓴 부인들은 가책을 느껴 유서를 쓰고 자살을 시도하거나
사제단에 양심 선언서를 맡기기도 했대.
사건 후 이십몇년을 피해 당사자인 유가족과 관련자들은 '빨갱이'의 누명을 쓰고 손가락질 받으며 감시받으면서 살았대.

겨우 97년에 인혁당 사건 진상조사위가 구성돼.
24년간 한없는 고통 속에 몸부림쳐 왔다는 희생자 하재완씨 부인 이영규씨는
“아무도 우리의 억울함과 고통을 헤아리지 않아 사건 진상을 아는 윤보선 전 대통령 부인 공덕귀 여사가 생존해 있을 때는 유족들이 매년 그분 집에 찾아가 눈물로 밤을 지샜다”라고 말했대
그때 당시 이들 희생자 8명의 부인은 국회 앞에서 1백60일이 넘도록 계속되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농성에 돌아가면서 참여해.

김대중아저씨가 대통령이 됐는데도 인혁당 사건은 진상규명이 안돼.
아줌마 아빠 귀신은 질기기도 해
몇십년을 지나서도 끝내 발목을 안놔줘.
아줌마 아빠는 예사 귀신이 아니고 물귀신이 됐나봐.
그때 총맞고 죽은거 아니었어?
물에 빠져 죽었었나?
지금도 아줌마 돌아다니는거 보면 아줌마 아빠는 귀신이 되어서도
힘이 정말 쎈거 같아.
정말 대단한 진주야.
죽어서 백골이 진토 되어도 그 진가는 여전하잖아?

세상이 아줌마 따라다니는 넘들 같은 사람만 있는건 아냐.
여러 단체에서 인혁당에 대해서 무진장노력했어.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사건 관련 책자 발간 작업을 진행 중이고,
독립 영상 단체 ‘푸른영상’은 인혁당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대.
대책위는 이 사건의 법률적 무죄 선고를 받아내기 위해 재심 청구 작업도 벌이고 있고
이밖에도 인혁당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각계 인사 1천인 선언을 이끌어냈는가 하면
사건 희생자 추모비 건립 운동도 벌이기도 했어.

근데 98년에 경북대에 추모비를 건립했는데 경찰이 와서 포크레인으로 부셔버렸대.

그뒤로 어떻게 됐냐고?
시장 돌아다니면서 인사하고 제주도 가서 악수하지 말고
아줌마가 좀 알아봐.
나도 그 뒤 이야기는 안알아봤어.
도와줄 길이 없고 아는척하기 싫어서 나도 외면하고 있어.
인간성 더럽다고 말할라고 그러지?
그래 나 인간성 더러워.

이넘의 나라는 딴사람한테 피해주지 않고 얌전히 살아도 인간성 더러워지는 나라야.
아줌마 아빠가 어찌나 개판을 쳐놨는지
얌전하게 사는 사람들
행동하지 않는 양심으로 욕먹는 나라인거야.
뭐 이런 개같은 경우가 다 있냐고.

아는게 병이라고
나 아는거 넘 많아서
병날라구 그래.
내 더러운 인간성 맨날맨날 확인하면서
병날거 같다구.

 

캡사이신/마이클럽

 

수석 졸업하는 박정희 생도 신경군관학교 2기생 예과 졸업식에서 박정희는 우등상을 받고 부상으로 부의 황제 명의의 금시계를 하사받았다. 대열 앞에서 생도 대표로 인사하는 사람이 박정희다. 졸업식장에서 재학생의 송사에 답하는 졸업생 답사를 낭독했는데, 그 답사 내용 중에는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휼륭하게 죽겠습니다."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滿洲日報 194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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