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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애국/박정희

박근혜 아짐마. 아짐마 아빠 이야기 좀 하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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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트는
'마이클럽'이라는 곳에서 필명이 '캡사이신'(본명 송강희)라는 40대 주부님이 올린 글입니다. 그 당시 이 시리즈는 많은 인기와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으면서, 마이클럽이란 사이트도 많이 알려지고, 정치에 관심없던 여자분들도 한번정도는 읽어봤을 만큼 이슈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이 글을 스크랩했다가 이제 오픈하는 이유는 요즘 조선일보가 기획특집으로 '기억의 정치'라는 코너를 마련했기에 저도 따라서 이 글을 오픈해 봅니다. 제가 마음 내킬때 조금씩 공개해 드리겠습니다. 대중적인 화법으로 상당히 흥미있게 작성되어서 읽는 재미도 있고, 여러가지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리즈물로서 처음부터 보시려면 '관심이애국' 카테고리 아래 '박정희' 카테고리를 확인하시면 됩니다.
 






박근혜 아짐마, 아짐마 아빠 이야기 좀 하자


 

인혁당 사건 이야기하는건 나도 좀 힘들어.
농담하고 꺼덜댈 기분이 아니거든.
정말 속이 뒤집힐라고 해.

잠깐 진정하고 이야기 해야겠다.
내가 넘 피곤해서 내일 쓸라고 했는데 열이 나서 오늘 저녁에 끝내고 자야겠어.
숨 한번 쉬고............

민청학련과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은 함께 구속되었지만 재판은 따로 진행해

인혁당 관련자들은 14편에서 말한대로
74년 5월 27일, 비상군법회의 검찰부에 의해 국가보안법, 반공법, 내란예비음모, 내란선동 등 갖가지 죄명이 붙여진 채 기소되.
그리고 6월 15일 비상 보통 군법회의 1심 재판을 시작으로 10개월만에 대법원 확정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돼.

이건 민청학련 사건 이야기할때 얘기했으니까 나머지는 생략할게.
1차 사건처럼 검사들이 조작이라고 사표쓰거나 그런 짓 안해.
검찰이랑 이런 애들도 아줌마 아빠 10년 겪어보고 얼마나 무서운지 다 알았거든.
그런짓 했다가는 간첩으로 같이 몰릴판이라고 생각을 했거나
양심같은건 없고 그저 아줌마 아빠 밑에서 개처럼 굴던 넘들만 모여있었겠지.
어쨌든...........

인혁당을 두그룹으로 갈라서 수사를 해.
윤보선·지학순·김지하·김동길·김찬국 씨 등과 같은 명망가 한 그룹
도예종·서도원·하재완 씨 등 잘 알려지지 않은 1차 인혁당 사건 관련자

당시 학생들이 주도한 반유신 투쟁을 민청학련으로 엮어 사형 선고를 내리면서
그 배후인 반국가 지하 조직을 만들어야 하니까 살벌하게 수사가 진행되었지.

이렇게 두그룹으로 나눈 것은 사형시켜도 별 관심을 끌지 못할 무명 인사들과
‘손 좀 봐줄’ 유명인들로 구분해서 정리할려고 그런거야.

인혁당 사건 관련자 가운데
도예종(삼화토건 회장)
서도원(전 <대구매일신문> 기자)
하재완(양조장 경영)
이수병(학원 강사)
김용원(경기여고 교사)
우홍선(중소기업 상무)
송상진(양봉업)
여정남(전 경북대 학생회장)
이렇게 8명이 보통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을 언도받아.

검거돼서 사형언도받을때까지 딱 10개월 걸린 이 사건 기간 동안
대법 판결이 끝날 때까지 가족면회 해본적 없고,
물고문, 전기고문, 잠안재우기, 몽둥이 찜질 할 수 있는 모든 고문 다하고,
변호사 접견같은거 구경도 못해보고,
가족들하고 편지같은거 주고받지도 못하고
재판받을 때 총칼든 헌병들한테 둘러싸여서 진행되고
최후진술 하다가 끌려나가서 죽게 맞고
하재완이라는 사람은 고문에 탈장까지 되고
서도원, 이수병, 김용원씨는 재판 도중에 의식 불명인 채 엎혀 나가고 엎혀 들어올 정도로 고문당하고
피의자들의 법정 진술까지 변조, 날조해
가족들이 보관하고 있었던 항소, 상고이유서는 물론 판결문까지 압수해가고
아직까지도 공판조서 일체도 열람 및 등본교부를 하지 않고 있대.

대법원이 75년 4월 8일, 이 사건의 주요 관계자 8명에 대해 사형을 확정했어.

숨막힐라고 한다.
숨한번 쉬고 하자

이 인혁당재건위 사건이 아줌마 아빠가 한 짓 중에 가장 끔찍한 짓이었다고 아직도 이야기되고 있는 것은
사형판결 10시간만에 8명 전원을 사형시켜버렸다는거야.
1975년 4월 8일에 사형을 확정하고 다음날인 9일에 8명 전원, 전부다 사형이 집행된거야.
1차 사건처럼 조작한게 드러날까봐 아줌마 아빠하고 중앙정보부가 담날로 바로 처리해버렸어.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급히 처형하고 시체도 안내줬대.
죽어서도 거기를 벗어나지 못한거야.
특히 전 경북대 학생회장이었던 여정남은 그때 나이가 30이었는데 정말 잔혹한 고문을 받았대.
나머지 사람들은 일반인이었고
유일하게 학생회장 출신이었던 여정남은
민청학련과 인혁당을 연결시키는 고리 역할로 그림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집중적인 조작 대상이었고
너무 만신창이로 고문을 당해서 사형을 안시킬래야 안시킬 수가 없는 지경이 되버린거지.
살려주고 싶어도 살려줄 수가 없었대.
한마디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서 사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야.
얼마나 심하게 고문을 당했던지 장이 다 터져나와서 수습을 할 수가 없었대
그래서 시체도 가족한테 내줄 수가 없어서 화장을 해버렸대.
시체를 안주려고 한게 아니고 지들도 줄 수가 없었던거지.

아무리 북한에서 직접 남파된 간첩이어도 사형선고하고 3, 4 년은 그 집행을 미루는게 기본 관행이었대
이런 경우는 없었대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회의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하고
엠네스티는 ‘야만적 살인행위’라고 말했대
1995년 4월 문화방송이 판사 315명에게 보낸 설문조사에 서 이 사건 재판이 "우리나라 사법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재판"이었다고 응답하여 다수의 법조인들도 이 사건이 정상적이지 못했음을 시인했대.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냐고

아줌마 아빠 독재 한다고 그만 두라고 대학생들이 시위했어.
각계 각층에서 아줌마 아빠 그만 두라고 시위 많이 했지.
그걸 그렇게까지 악랄하게 조작해서 사람을 그렇게까지 죽여서 그 짓을 계속 하고 싶었어?
그래 아줌마 아빠는 죽었으니까
딴 이야기 좀 해보자.
당시 총리가 김종필이었어.
그리고 당시 사건조작의 총지휘자인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이 98년에 경북관광개발공사 사장을 했는데 열받아서 그 아저씨 이름을 잊어버렸다.

여기서 진짜 아줌마한테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
아줌마 아빠 말고 아줌마말이야.
1975년이면 아줌마 나이 24살이고
아줌마가 아줌마 엄마 죽고 퍼스트레이디 2년차 되던 해야.
아줌마가 이 사건을 몰랐다고 하지는 않겠지?
라푼젤처럼 높은 탑에 갇혀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아줌마의 여린 마음 다칠까봐 쉬쉬해서 몰랐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아줌마 뭐했어?
그때 뭐했냐고
아줌마 아빠는 원래 그렇게 타고 난 사람이라고 하고
아줌마 말이야

난 아줌마가 진짜 마른 하늘에 날벼락 안맞고 아직도 멀쩡하게 돌아다니는거 보면 속에서 천불이 일어
아버지의 위업 어쩌고 그런말 하지마
#%^^%*&^&(&)*(**_)+)(_+)|_|@#$@#%$#%$^%$%^$
미친듯이 욕하고 있는거야.
욕은 답글로 달게.
이성을 찾은 내가 참는다. 진짜
내가 넘 과격해?
아줌마도 입장 바꿔서 당해봐
꿈에도 그런꼴 안당해본 아줌마 지지자들은 나보다 더 험하더라.

인면수심이라는 말이 있지.
아줌마한테는 그말도 아까워.
가녀린척 우아한척 더러운 미소 짓지마.
정말 토할거 같아.
제발 부탁이니까 아줌마 나와서 그렇게 싸돌아다니지좀 마
아줌마때문에 텔레비도 안보고 신문도 안보는데
인터넷까지 출몰하는 바람에 안볼 수도 없고
정말 미치겠다
내가 무슨 고장난 녹음기야?
근데 아줌마 보면 진짜 이말 밖에 안나와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그렇게도 많이 지어서 아줌마 꼴까지 봐야되냐고.
정말 징그러워.

열받아서 속이 다 울렁거린다
인혁당 사건에 관해서는 아직도 할말 많은데 담에 해야겠다
글도 넘 길어지고
머리도 아프다.

 

캡사이신/마이클럽

 

수석 졸업하는 박정희 생도 신경군관학교 2기생 예과 졸업식에서 박정희는 우등상을 받고 부상으로 부의 황제 명의의 금시계를 하사받았다. 대열 앞에서 생도 대표로 인사하는 사람이 박정희다. 졸업식장에서 재학생의 송사에 답하는 졸업생 답사를 낭독했는데, 그 답사 내용 중에는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휼륭하게 죽겠습니다."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滿洲日報 194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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