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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감상문

좀비, 왜 영화감독 박찬욱은 이 소설을 추천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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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에게나 내재된 폭력성이 있다. 또 상상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상상 속에서는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인 극악의 범죄도 가능하다. 그런 상상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그런 상상력은 오히려 건강한 자아를 만들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나는 MB정권 5년 동안 여러번 슈퍼맨이 되었었다. 그러나 끔찍한 부류들이 있다. 상상을 실천하는 그들은 실존자들이다. 여기 희대의 연쇄살인범 '밀워키의 식인귀'라 불리는 제프리다머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 있다.





이 책을 선택한 2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는 내가 '좀비'라는 '괴생명체'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브램스토커상을 받은 공포소설이라는 점이다. 박찬욱? 솔직히 그가 추천했다고 더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내가 관심을 준 소설에 우연의 일치로 박찬욱이 끼어들었을 뿐이다. 그러니 박찬욱은 무시하고, 주인공의 일기를 훔쳐보자.




 아주 멀쩡한 사이코패스의 일상

 




31살의 쿠엔틴(Q_P_)은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2년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지만, 보호관찰과 꾸준한 정신과치료를 받으며 착하고 건전한 인격체로 변화되는 중이다. 유명한 대학교수 아버지와 다정다감한 어머니, 누나, 할머니에게도 변함없는 신뢰와 애정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는 가족이니까. 쿠엔틴은 대학을 다니면서 나름 공부도 하고, 기숙사 관리인으로서 돈 벌이도 한다. 할머니 심부름도 불평 한마디 없이 친절하게 들어주고, 부모님 관심에 대해서도 예의바르고 깍듯하게 감사함을 표시한다.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미루어두었던 치과치료도 다시 받는다. 모든 것은 쿠엔틴이 사고를 치기 전 평온했던 그때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근데 어쩐다. 쿠엔틴에겐 드러내지 않는 욕망이 있었고, 그 욕망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이 빠져있다. 그것만 제외하면 이제 쿠엔틴은 너무나 착하고 평범한 어른이다. 그의 말 처럼 그는 괜찮았다. 그는 멀쩡했고, 아주 괜찮은 상태다.


건물이 땅속부터 흔들려서 그러는 것처럼 살짝 떨리는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궁금했다. 내가 아버지의 목을 조를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저항할 거야, 난투가 벌어질거야, 그는 강해. 싸움 중에 우리는 아주 가까이 있게 되겠지. 나는 생전 처음보는 것처럼 내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제프리다머, 그는 누구인가

 



▲ 최소 17명을 극악무도하게 살해한 실제 '제프리다머'


소설은 1960년 5월 21일 미국 밀워키에서 태어난 '제프리 라이오넬 다머(Jeffrey Lionel Dahmer)'를 모델로 하고 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제프리다머가 연쇄살인범이고 잔인하게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곳에 그의 모든 행적을 기록할 수는 없지만, 그를 단순히(?) 연쇄살인범이라고 하지 않으며, 세계 살인마 사전에 올린 이유가 다른데 있다. 


제프리다머의 부모는 그다지 좋은 사이가 아니었지만, 비교적 평범한 가정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으며,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성격을 바꿔보려고 했으나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되어 포기한다. 제프리다머는 어릴 때 부터 '죽음'에 집착했다. 죽어있는 동물을 수집하고, 배를 갈라서 내장을 관찰하며 성장했다. 살아있는 동물의 가죽을 벗기거나 염산에 빠뜨려서 죽이고, 그 뼈를 기념품 처럼 간직했다. 성장해서는 게이바에 가서 남자를 꼬신 후 약을 먹이고 목을 조르거나 머리를 가격해서 죽였는데, 제프리다머가 살인하는 진짜 이유는 지금부터다. 시체와 섹스를 하고, 끓는 물에 잘린 머리를 넣고 살을 모두 발라내서 해골을 수집했던 것이다. 토막난 신체 부위는 냉장고에 넣어 보관했다가 요리를 해서 먹는다. 


제프리다머의  성적욕망은 언제나 죽음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수집한 해골을 보거나, 금방 살해한  사람의 배를 갈라서 꿈틀거리는 내장을 보면 흥분을 느낀다 했다. 그것들을 보면서 자위행위를 한다. 책 제목이 <좀비>가 된 이유는 실제로 제프리다머가 살아있는 '섹스노예'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있는 사람의 머리에 구멍을 뚫고 염산을 부어서 뇌의 특정 부분만을 파괴한다면 언제든지 자신이 원할 때 섹스를 할 수 있는, 명령에 복종만 하는 '좀비'같은 존쟤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는 주로 유색인종을 타겟으로 삼았고, 피해자 중에는 14살 어린 아이도 있었다. 


제프리다머가 체포될 당시에는 아주 평온하고 담담한 상태였다고 한다. 정신이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법정에서 936년형을 언도받는다. 그러나 제프리는 같이 수감된 흑인에게 무참히 살해되면서 생을 마감한다.




 박찬욱, 정말 이 책을 재밌게 읽었을까

 


▲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한 장면



박찬욱은 한국 상업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이는 아시아 감독 중 한 명이고. 그 정점에는 2003년 <올드보이>라는 작품이 있다. <올드보이>는 2004년 제 57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면서 '박찬욱'이라는 이름이 세계에 알려지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사실 나는 <올드보이>보다 <JSA>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지만, 분단국가라는 역사적인 특수성을 다른 나라의 관객들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좀비>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무엇때문에 박찬욱은 이 소설을 추천했을까'라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혹시 저자 '조이스 캐럴 오츠'가 2004년 이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유명인이며, 단순히 사이코패스의 내면을 그린 기념비적인 작품이라서 그랬을까. 적어도 내가 볼 때 <좀비>는 핵심을 놓친 공포소설이다. 동성애자이며 인육을 먹고, 시간[각주:1]을 즐기는 살아있는 악마를 이해하기에는 작가라는 전문 직업인도 그 심연에 쉽사리 다가설 수는 없었던 걸까. 소설은 '겉과 속이 다른 성인 살인범'을 조명하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물론, 사이코패스의 살인과 그 심리를 주제로 쓰여졌다는 것은 칭찬해주고 싶다. 지루하지 않게 읽혀진다. 그러나 적어도 '프로 작가'라면 같은 영어권이라는 장점을 살려서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좀 더 디테일하게 추적하고 관찰했어야 했다. '0'에서 시작해 '100'을 채워가는 것이 작가적 상상력인데, 실제 데이타를 기초로 했다면 더욱 풍성하고, 설득력있게 이야기거리를 만들 수도 있었다고 본다. 결말이야 소설기법으로서 현재도 나쁘지 않지만, 쿠엔틴의 성장과정이 삭제된 것은 실화바탕 소설에서 엽기적인 '인물'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소재를 놓쳐버린 것이고, 관찰자로서 독자의 호기심과 감정이입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보통의 살인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사이코패스, 신의 실수인가 시험인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사이코패스(Psycho pass)'는 반사회성 인격장애로 치료의 대상으로 포함시키되, 엄밀히 말해서 정신병의 일종이 아니다. 무슨 말이냐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그 사람은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나고 치료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이것이 진짜 무서운 이유지만, 모든 사이코패스가 살인범이 되지는 않으니 너무 두려워하며 살 필요는 없다. 알다싶이 사이코패스는 거짓말에 능수능란하며,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움직인다. 소설 <좀비>를 보면 쿠엔틴이 자신의 심리상태와 계획을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자신과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상황을 정리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라. 당신도 그런 사람들을 몇 번은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정치권에 많다고 보지만.


 나는 TV 뉴스나 인터넷신문에서 끔찍한 범죄기사를 읽을 때, 과연 신은 정말 존재할까...라는 우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개신교의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다 했다. 자유의지도 불어 넣었으므로 모든 선악은 인간이 선택하는 것임을 신은 강조한다. 그렇다면 사이코패스는 대체 무슨 이유로 존재케 했을까. 양목장에 풀어놓은 늑대 한마리. 양은 양치기에게 도움을 청하겠지. 신에게 인간이란 결국 그런 존재일까.


내 좀비는 심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좀비는 "신이 주인님을 축복하시기를"이라고 말할 것이다. 내 좀비는 "주인님은 선하십니다. 주인님은 친절하시고 자비로우십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퍼런 내장을 쏟아낼 때까지 마음껏 농락하십시오, 주인님"이라고 말할 것이다.


  1. 시체와 섹스를 하는 것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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