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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감상문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이 본 한국,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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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헌 화백

 

 

많이 늦은 리뷰군요. 이 책을 들게된 것은 '베스트셀러'라는 평가를 받고 한참 후입니다. 마땅히 관심가는 책이 없어서 고민 아닌 고민을 하던 중에 '그래, 한번 더 속아보자'라는 심정으로 골랐습니다. 저는 이 책이 일종의 자기계발 서적인 줄 알았습니다. 예전에 많이 읽었던 분야라 '뻔한 이야기'라고 지레짐작 했던 것이죠. 그런데 읽어보니 아니었습니다. 마음을 다독이는 '힐링 서적'이고, 깊은 호흡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구입했을 당시 550쇄본 이었습니다. 1쇄를 2000부로만 잡아도 110만권이 판매 부수이니 소위 대박을 친 것입니다. 지금은 더 늘어났을 것입니다. 출판 시장에서 흔하지 않은 사건(?)을 만들어낸 이 책은 한국인의 정서 상태가 현재 어디에 표류하고 있는지 친절하게 알려준 것 같았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습니까.
 



 

 무엇으로 시작해야 할까

 

생명이 건강하게 자랄 수 없는 갈라진 논 바닥과 같은 모습,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논할 때 저자 '혜민 스님'에 대한 이력이 이슈가 되는 것은 달갑지 않았습니다. 엄친아, UC버클리대 영화 학도, 하버드 대학교 비교종교학 석사,  프린스턴대 종교학 박사, 현재 햄프셔 대학 종교학 교수.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시간 낭비 입니다. 그 분들은 아직 멈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만 멈추시고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일에 맨 몸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보이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1강 휴식의 장 / 2강 관계의 장 / 3강 미래의 장 / 4강 인생의 장

5강 사랑의 장 / 6강 수행의 장 / 7강 열정의 장 / 8강 종교의 장

 

이 책은 총 8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목차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읽고 싶은 곳부터 읽어도 상관없습니다. 휴식이 필요한 분은 1강 부터, 종교적인 갈등을 겪고 있는 분은 8강 부터 펼쳐도 됩니다. 책 제목을 살펴보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인데, 과연 무엇이 보인다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으신지요. 혜민 스님이 책 전반에 걸쳐서 말씀하시는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문제풀기 하듯이, 관념적으로 그 답을 즉시 말씀할 수 있는 분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분도 계실텐데....제가 느낀 답은 이 글의 맨 마지막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혜민의 눈으로 본 한국, 한국인

 

총 8챕터 중 중간 중간 혜민의 생각이 짧은 조언이 아닌, 제대로 된 형식의 수필이 실려 있습니다. 그 중 하나의 글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대목이었습니다. 제 4강 인생의 장에 있는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글입니다. 그는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어떤 명상을 하세요?"

"하루 중 몇 시간이나 수행을 하시나요?"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에 따라 그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가를 결정하는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인 것이다.

 

"스님은 지금 어느 절에 계십니까?"

"어느 절에서 오셨습니까?"

 

한국인들은 스님의 문중이 어디이고, 원래 어느 절 소속이고, 지금은 어느 절에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듯 했다. 이런 대화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그 사람의 '소속과 직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소속과 직위로 정체성을 규정하는 한국인. 어쩌면 그의 시선은 정확한지 모릅니다. 7개월이라는 최단 기간에 100만부를 돌파한 것도 독서와 멀리있는 한국인에게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How'가 아니라 'What'이라는 키워드로 조직된 사회에서 지칠대로 지친 사람들의 다급한 손짓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OECD 가입 국가 중 자살율 1위라는 통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는 '경쟁과 성장' 논리에 의해 더 중요한 가치들이 외면과 무시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원래 세상은 그래'라는 사회 전반에 깔린 냉소와 체념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목소리를 배부른 돼지의 주장으로 취급합니다. 대체 모두가 불행해지는 세상을 누가 만들어가는 것일까요. 한국 사회에 대한 혜민의 저런 생각은 '와락 엄마' 정혜신 정신과 의사의 마음과 조용히 맞닿아 있습니다.

 

 


"지난 2년간 평택에서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15명이 자살이나 돌연사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배우자, 부모 등 가족의 자살까지 합치면 사망자는 그보다 더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이 2년 전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2500명이 해고된 후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해고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직장에서 잘렸다고 그렇게 죽을 수가 있나..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경우는 일반적인 해고와 좀 다릅니다. 77일 간의 파업 기간 중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이 겪는 정신적 외상만큼 끔찍한 폭력에 노출되었고 그것이 결국 심각한 정신적 상처로 연결된 까닭입니다.

 

일상적으로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사람이 70%가 넘고, 만성화된 분노와 무력감은 일상을 마비시켰습니다. 가정이 해체된 사람도 많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 아프고 눈물 나는 것은 아이들이 보이는 불안과 공포, 두려움입니다. 파업 당시... 아빠가 짓밟히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한 아이들, 부모의 죽음충동을 감지하며 하루하루 숨죽이며 살아온 어린아이들, 그래서 아이들이 많이 불안해합니다.


파업 후 버스를 타지 못하는 6살 아이(그에게 버스란 아빠를 구타하던 경찰들이 타던 버스), 해만 지면 ‘아빠, 어디야, 경찰 조심해..’ 하는 말을 하려고 30분마다 아빠에게 전화를 하는 아이, 아직도 길을 가다 경찰을 보면 공황상태가 되어 숨는 아이도 있습니다.

 

요즘 저는요.. 우리 사회가 사람에게 참 함부로 한다...고 느낍니다."


 

 

보이는 것을 찾았습니까

 

혜민이 승려가 된 이유는 ' 끝없이 분투만 하다 죽음을 맞이하기 싫어서'였다고 했습니다. 성공만을 위해 경쟁하다가 죽음을 맞게 되면 허탈할 것이라는 깨달음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만든 성공의 잣대에 올라가 헐떡거리며 살다가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요, 우리 사회에 혜민 스님, 장혜신 원장님 같은 분도 필요하지만, 진짜 있어야 할 분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유있는 분노'를 보이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같은 분들 말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치유의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그래야 이런 책을 읽고 눈물로 위안 얻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입니다. 누군가는 비인간적인 모든 폐단의 연결 고리를 끊으려고 노력해야, 새 살이 예쁘게 돋는 치유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반복적인 치유가 일시적인 위로와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머물까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는 이유입니다. 어쩌면 진짜 힐링이 필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들이 아니라 치유가 필요한 사회를 생산해 낸 이 시대의 주류라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혜민은 우리에게 '멈춰서 보라'고 했고, 무엇을 봐야 하는지 그것에 대한 답도 책표지 바로 다음 장에 적어 놓았습니다. 만약 그것을 찾지 못했다면 그건 '아직 내가 멈추지 못한 것'이고, 찾았다면 잠시라도 마음의 평안을 얻었을 것입니다. 다만, 강제로 멈춰진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보일까 하는 염려도 듭니다. 혜민의 말처럼 삶은 언제라도 부서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힘에 의해 멈출수 밖에 없는 분들에게 혜민의 작은 위로를 전합니다.

 

 

 

 

나로호는 우주로 날아갔지만, 우리는 멈춰야만 하는 불행한 시대를 생각하며

- 유쾌한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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