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서감상문

공포소설, '뱀파이어 걸작선'을 읽어보니

반응형


[도서정보 바로가기]


장르문학에 대한 호기심이 아이가 풍선 불듯이 조금씩 자라면서 선택한 공포소설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옛날 사람들은 뱀파이어를 어떻게 표현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읽어보니 단편소설 이라는 한계로 인해 '성인동화'를 읽는 느낌이었고, 표현법은 작가들만의 개성을 느낄 만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더군요. 다만 그당시 시대상이 반영되다 보니 '고전소설'이 주는 느낌은 신선했습니다. 총과 자동차 대신에 칼과 말이 나오는 시대의 소설 속 뱀파이어는 '잔인한 악마'라는 느낌보다 '밤안개 속 가로등 아래에 있는 희뿌연 형체'라고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뱀파이어 걸작선'은 소설 속 '뱀파이어'의 역사를 이끌어왔던 작가들의 글을 한번에 볼수 있다는 매력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다른 나라에 살았던 소설가의 상상 이야기. 과거 TV시리즈 '환상특급' 같은 10편의 기묘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카르미라(1872) - 조셉 셰리든 레퍼뉴
2. 뱀파이어(1819) - 존 폴리도리
3. 탑실(1912) - 에드워드 프레더릭 벤슨
4. 시튼의 이모(1922) - 월터 존 데라메어
5. 드라큘라의 손님(1897) - 브램 스토커
6. 피는 내 생명(1911) - 프랜시스 매리언 크로퍼드
7. 죽은 연인(1836) - 테오필 고티에
8. 뱀파이어의 부활(1845) - 제임스 맬컴 라이머
9. 사라의 묘(1900) - 프레더릭 조지 로링
10. 비이(1835) -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각 저자들을 대표해서 '브램 스토커 외'라고 표지에 인쇄가 되어있더군요.
그만큼 그가 환상소설 가운데서도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공포문학 장르에 끼친 영향이 크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영화와 연극으로 오래전부터 무대에서 사람들에게 공포와 재미를 주었습니다. 대부를 만들었던 '프란시스 코폴라'감독의 '드라큘라' 역시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를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드라큘라

그러나 이 책에 있는 그의 작품은 제게 별 감흥을 주지 못했습니다. 최초의 뱀파이어 소설이라고 칭하는 존 폴리도리의 '뱀파이어'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흥미롭게 읽을 수는 있었지만 이미 제가 세련되고 자극적인 현대식(?) 뱀파이어에 길들여졌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뱀파이어 걸작선'에 있는 작품중에서 대부분의 뱀파이어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한편만을 간략하게 소개해 볼까 합니다.




 시튼의 이모 (1922년 作) : 월터 존 데라메어

이 단편소설의 매력은 '현실 속 공포의 불명확성'에 있습니다.
사실 '시튼의 이모'에는 '뱀파이어'라는 단어 조차 등장하지 않고, 긴박한 상황이나 유혈이 낭자한 모습 등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소설을 가장 재밌게 읽었습니다. '환상문학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느낌을 받을 만큼 음산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로 시종일관 궁금증을 유발하는 탁월한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후반부 시튼 이모의 한마디와 결말에서 알게된 반전은 저에게 무수히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더군요.

화자인 '위더스'를 통해본 친구 '시튼'과 그의 이모 사이의 알수없는 관계를 설명한 것이 이 소설의 전부입니다. 줄거리라고 할것도 없을 만큼 단편적인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괴짜이고 왕따인 시튼과 어린 시절부터 그를 알고 지낸 '위더스'가 시튼의 이모집에 놀러가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시튼은 위더스에게 이모에 대해 이런 말을 해줍니다.


"저 여자는 보지 않아도 다 알거든. 그래서 엿같이 무서운거야."


위더스와 시튼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것들로 부터 알수없는 불안감을 느낍니다. 밤마다 사라지는 이모와 점점 쇄약해져가는 시튼. 훗날 위더스가 시튼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다시 시튼의 이모 집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이미 할머니가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기묘하고 무서우면서도 이상한 기운을 뿜어내면서 위더스를 맞이합니다. 위더스가 그집을 떠나면서 결심한 것은 친구 시튼과 그의 이모에 대해서는 더이상 알려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은 누구도 이상한 '시튼'과 역시 이상한 '그의 이모' 사이의 관계를 알수 없을 겁니다.
사실 하나의 퍼즐같은 이 소설을 설명한 것 자체가 상당히 당혹스러운 일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작가에 관한 평을 들어보는 것이 더 좋을듯 하군요. 책에는 그에 대해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월터 존 데마메어(Walter john de la Mare, 1873~1956)
영국 켄트 주 출생. 주제를 드러내지 않고 미묘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법과 환상적이고 신비한 분위기, 독창적인 언어로 주목받음. 100여편의 단편소설을 남겼으며 <시튼의 이모>는 공포 소설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책의 대부분이 설화나 전설, 민담의 형식을 띄고 있다면 <시튼의 이모>는 그것들에 비해 훨씬 섬세하게 조여드는 맛이 있습니다. 어둠이 짙게 내려 앉은 저녁에 2층 창문을 통해 바라본 정원. 그 뒤에 펼쳐진 숲속의 나무들 사이에서 무엇인가 소리없이 움직이고 있는 듯하고,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어둠 속에서 배회하는 그 무엇과 언젠가는 마주칠 것 같은 느낌. 그런 알수 없는 긴장감이 <시튼의 이모>에는 녹아들어 있습니다.

'뱀파이어' 소재의 모든 종류의 작품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당대 최고 작가들의 단편소설 모음집, '뱀파이어 걸작선'. 장르문학을 사랑하고 호러문학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한번 정도는 읽어봄직한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관련 포스트] 소설 렛미인, 악마와 천사의 양면성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