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렛미인(Let me in) 보셨나요?
그 영화를 봤을 때도 기존의 뱀파이어 영화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것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와도 달랐고,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와도 달랐습니다. 단순히 성인 뱀파이어에서 소녀 뱀파이어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하기에는...머릿속은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가슴은 알고 있는 그런 느낌. 근데 그 차이를 소설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추석 몇 일 전부터 읽어서 연휴 끝나기 전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법 두툼한 두께에다가 2권으로 되어있다는 것이 읽고 싶어서 구매했음에도 막상 손에 들었을때는 부담이었습니다.
'읽던 책들은 잠시 뒤로 미뤄야겠는 걸....'
그리고 첫장을 넘겼을 때 그 낯설음.
대부분의 번역 소설들이 그렇듯, 처음 10장은 마치 난생 처음보는 길에 던져진 아이가 된 심정입니다. 항상 똑같죠. 그 새로운 길에서 헤매고 있을 때면 주변에서 하나 둘 사람들이 나와서 저의 손을 잡고 이곳 저곳으로 안내를 해줍니다. 조금씩 진정되어가는 저는 어느새 그들과 하나가 됩니다. 슬프기도 무섭기도 한 그들과 말이죠. 제목에도 있듯이 저에게 이 소설은 뱀파이어 이야기가 아닙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게 읽혔습니다. 오히려 '성장소설'이라고 해야 맞을 듯 합니다. 다만 뱀파이어 소녀가 등장했고, 그녀와 특별한 우정을 만들었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왕따 소년의 고통과 욕망
모욕감. 10대의 어린시절에 한번쯤 경험해 봤을 것입니다. 저역시 누군가를 죽여야 내가 살수 있다는 상상을 시작한 것도 그때가 처음으로 기억됩니다. 힘쎈 친구들과 그들의 아는 형들을 두려워해야 했으니까요. 주인공 오스카르의 인생이 큐빅 퍼즐 처럼 복잡한 것은 어른들의 삶에 존재하는 큐빅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적군과 아군, 밀고자와 조력자,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 원망스러운 엄마와 아빠.... 그들과 더불어 살면서 오스카르의 인생 역시 돼지처럼 꽥꽥거려야 하는 시절이 있고, 개선장군처럼 으쓱 할 때도 있습니다. 시나브로 만들어지는 그의 인생. 그러나 '자신의 삶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어른들의 가르침은 소외된 아이들에게 또다른 고통과 욕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소녀
소설 속 엘리는 생각보다 많이, 자주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존재감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엘리는 존재하지 않는...아니,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믿어야 생존할 수 있는 생명체. 있어도 없어야 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영원히 살수 있음에도 아무도 모르는 존재가 되야하는 것. 그것은 엘리에게 지독한 외로움으로 표출됩니다. 그 외로움을 가늠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았습니다. 엘리는 다른 뱀파이어들 처럼 '자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합니다. 12살로 200년간 살았음에도 '죽음'에 대한 공포감은 엘리도 어쩌지 못합니다. 정작 자신은 생존을 위해서 타인을 '죽음'으로 초대하면서 말입니다. 엘리는 자신이 살아야 되는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사라져야 하는 이유도 모릅니다. 그저 삶과 죽음의 경계선 아래에 숨어있는 공기 같은 존재일 뿐.
거울을 보듯이....소년과 소녀의 우정
엘리와 오스카르는 서로에게 거울같은 존재 입니다. 그들이 만날 때마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고, 보고 싶어하는 감정이 생기고, 키스를 하는 것은 자존감에 대한 욕구이자 자기연민의 또다른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엘리가 뱀파이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오스카르는 공포에 떱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외로움을 이해해주는 엘리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됩니다. 이 대목은 참 의미심장한 부분입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지...인간의 '본능'보다는 '본질'에 대한 적절한 힌트를 제시하는 것이죠. 소설 속 엘리의 등장이 많지 않음에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독특하다 못해 괴상한 그의 문체
저자 린드크비스트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그의 어린시절의 추억과, 실제 지명과 진짜 있었던 사람들의 이름, 그당시의 사건들을 등장시켰다고 합니다. 스웨덴의 소설가들, 인기있었던 TV프로그램들, 만화책들...그래서 인지 몰라도 리얼리티가 소설 전반에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러소설이라기 보다는 '성장소설'에 가깝다고 제가 느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그것들을 괴상하리 만큼 독특한 문체로 풀어가고 있는 린드크비스트. 실제로 스웨덴에서 출판을 거의 포기했었다고 하지요. 괴상하다는 이유였답니다. 개인적으로 번역가에 대한 조금의 불만을 배제한다면 그의 문체는 상당히 매력있습니다. 거칠면서도 섬세한 면은 '스티븐 킹'과 비슷한 느낌도 있지만, 어린 시절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던 과거를 녹여낸 듯한 표현력은 '스티븐 킹'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또다른 매력입니다. 물론 그의 독특하고 자유분방한 표현력때문에 책장을 더 빨리 넘기지 못하기도 했습니다만, 제가 한 명을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면 린드크비스트를 선택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제게 명작 중 하나로 선택되었으니까 말이죠.
한국 독자를 위해 특별히 별도 페이지가 준비되어 있더군요.
제가 한국 감독 중에서 김지운 감독을 좋아합니다. 재밌게도 그가 한국 영화 중에 '장화 홍련'을 제일로 꼽더군요. 3번이나 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렛미인'도 '장화홍련'과 여러가지면에서 비슷하다면서 '장화홍련'이 성공했다면, 자신의 '렛미인'도 그만큼의 관심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은 적중한 것 같습니다.
영화를 인상적으로 보셨던 분이라면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같은, 영화에서 언급하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가 책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숨겨진 이야기를 훔쳐보는 기분. 특히 엘리와 호칸의 과거 그리고 엘리와 오스카르의 관계는 짜릿하면서도 가슴 아린 느낌을 얻게 되실 겁니다. 더불어 뱀파이어를 만나보고 싶다는 엉뚱한 욕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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