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 장편소설 '천년의 침묵'
그리스의 종교가·철학자·수학자.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을 ‘수(數)’로 보았으며, 수학에 기여한 공적이 매우 커 플라톤, 유클리드를 거쳐 근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피타고라스의 정리의 증명법은 유클리드에 유래한 것이며, 그의 증명법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그는 뒤에서 살인을 지시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우선 이선영 작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천년의 침묵'은 정말 대단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이런 소재의 소설이 나왔다는 것은 참으로 보기드문 일이었습니다. '수'와 '고대 그리스 역사'로 이토록 흥미진진하고 드라마틱하게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것도 첫 장편소설에서 말입니다!
권력의 맛에 길들여지는 순간 정의는 변질 된다.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받는 '현자 피타고라스'. 자신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모략과 살인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것이 소설 속 허구이기는 하나 그 당시 상황으로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의 제자 히파소스는 피타고라스의 오류를 바로잡고자 했으나 결국 그의 제자들에게 살인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영원 불멸한 진실 그 자체이고자 했던 피타고라스에게는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순수했던 학자에서 어느새 권력의 맛에 길들여진 피타고라스는 순간 순간 주어지는 선택의 기로에서 학자보다는 권력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살인도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범주에 있었습니다. 살인으로서 그 회색빛 진실과 명예를 지키고자 했던 것은 피타고라스. 허구와 현실 속에서 그 접점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불륜 그리고 동성애
쾌락은 인간이 추구하는 본성의 하나. 사랑의 감정은 뜨거운 불보다 더 무섭고 빠르게 영혼을 잠식해 버립니다. 불륜과 동성애 중에 어느쪽이 더 나쁜 것인가요? 만약 저 두가지가 신의 영역에서나 가능한 '진실한 사랑'에 기초한다면? 현자의 아내를 사랑했던 현자의 제자 히파소스. 또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고 살았던 현자의 아내. 아내를 멀리하고 미소년의 몸을 탐닉하는 현자. 그러나 그 누구도 원래의 위치에서는 행복하지 않았다면...그것이 그들의 인생이고, 운명일까요. 달갑지 않은 운명을 순순히 받아 들여야 할까요. 답은 누구도 내릴 수 없기에 더욱 가슴아픈 일입니다. 참으로 가슴 찡했던 내용이었습니다.
공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은 사람을 꼬이게 합니다. 수많은 유혹이 살금살금 다가옵니다. 자신의 아들을 시험도 거치지 않고 현자 학파에 넣으려는 권력자 킬론. 정의롭지 못하다며 거절하는 현자. 우습게도 두개의 권력은 서로가 타락했다며 손가락질을 합니다. 거기에 무지한 시민들은 어느 한쪽의 권력에게 희망을 걸어보기도 합니다.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삶을 바꿔줄거라고 믿고 앞뒤 가리지 않고 동조합니다. 각각 바라는 그 목적이 이루어지는듯 보였지만 결국 눈앞에 보인 것은 시퍼런 칼날 이었습니다. 그것은 킬론이든 현자든 시민들이든 비켜가지 않습니다. 부패한 것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을테니까.
그것이 신이 우리에게 부여해준 인생인 듯 합니다. 그렇다면 인생이란 고통의 연속이고, 무의미하다라는 회의론을 갖게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비울수록 채워진다는 역설적인 깨우침을 주기 위한 것일테구요. 이 책의 확실한 교훈이 있다면...
'부패한 권력의 댓가는 주변사람의 피까지 요구한다.'
'천년의 침묵'은 비록 소설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섬세하고 세련된 문장 구성은 그녀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느껴집니다. 수정만 2년을 했다는 '천년의 침묵'은 반드시 읽어봐야 할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비록 조선일보 주관의 공모전 수상작이지만 소외된 장르에 대한 관심이라는 차원에서는 응원을 해주고 싶습니다. 이선영 작가의 차기작을 어서 볼수 있기 바랍니다. 당분간은 그녀가 내게 준 감동을 머릿속에서 곱씹어보는 재미에 빠져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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