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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영화

드레드(Dread) : 트라우마의 발작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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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드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은 회피의 대상이면서도 집요하게 끌리는 맛이 있다.
그것은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한발 한발 그 실체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지만, 어쩌면 '실체'의 궁금증 보다는 그 스릴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영화 '드레드'는 그 짓거리에 대한 영화이며, 엔딩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버렸다.



클라이브 바커라는 영국 호러소설가의 28페이지 단편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영화 '드레드'는 상당히 암울한 영화다. 분위기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그 내용 또한 그렇다.  '두려움'에 대한 실체를 밝히기 위해 3명의 대학생이 실험을 하는데, 트라우마의 심각한 장애를 앓고 있는 '퀘이드'는 그 '두려움'과 하나가 된다. 우리 속담에 미워하면서 닮아간다는 말을 여기에 비유해도 될지 모르겠다.


누가 퀘이드 일까?


솔직히 나는 퀘이드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 했는지, 이용하려 했는지, 즐기려고 했는지 알지 못하겠다. 그의 등에 천사의 날개 같은 문신을 봤을 때는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 들였으나, 점점 미치광이가 되어가는 그를 볼 때마다 그것은 '극복의 날개'가 아니라 '탈출의 날개'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본질은 역시나 '두려움의 극복'보다는 '한패가 되서 즐기는 쾌락'을 선택하는 쪽이 더 어울리는 것일까? 그것이 불완전한 인간에게 어울리는 선택이었을까?


공포는 어디서 부터 나오는 것이지?

영화 초반은 조금 지루하다. 슬래셔 무비에서 볼 만한 장면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정도 수준으로는 '잔인해서 볼만했다!'는 호평을(?) 듣기는 힘들다. 그러나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3명의 사이가 멀어지면서 부터는 영화는 암울함과 끔찍함의 정점으로 치닫는다. 재밌는 것은 이 영화를 보면 또다른 영화가 떠올랐다는 것이다. 바로 화제의 문제작 '마터스'다.

[내가 본 영화/내가 정한 명작] - 마터스:천국을보는 눈 - 호러영화의 걸작인가 쓰레기인가


이 영화는 마터스와 약간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영상적인 잔인함이야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내용적으로 둘다 꽤 암울하고, 꽤 찝찝하다. 아마도 그것은 미쳐가는 것이 퀘이드 뿐만이 아니기 때문인것 같다. 참고로 영화에서 미쳐가는 또 한명의 등장은 짧은 시간이지만 그 장면을 위해 다섯대의 카메라로 6시간 동안 공을 들였다니,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그 무엇'이 그 장면에 모두 있었으리라.

암울한 공포영화의 맛이 그리운 분들에게는 추천한다.
그러나, 당신이 트라우마 환자라면 영화 대신에 항우울제 복용을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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