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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애국/박정희

박근혜 아짐마. 아짐마 아빠 이야기 좀 하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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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오래전 '마이클럽'이라는 곳에서 필명이 '캡사이신'(본명 송강희)라는 40대 주부님이 올린 글입니다. 
그 당시 이 시리즈는 많은 인기와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으면서, 마이클럽이란 사이트도 많이 알려지고, 정치에 관심없던 여자분들도 한번정도는 읽어봤을 만큼 이슈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이 글을 스크랩했다가 이제 오픈하는 이유는 요즘 조선일보가 기획특집으로 '기억의 정치'라는 코너를 마련했기에 저도 따라서 이 글을 오픈해 봅니다. 제가 마음 내킬때 조금씩 공개해 드리겠습니다. 대중적인 화법으로 상당히 흥미있게 작성되어서 읽는 재미도 있고, 여러가지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리즈물로서 처음부터 보시려면 '관심이애국' 카테고리 아래 '박정희' 카테고리를 확인하시면 됩니다.




박근혜 아짐마, 아짐마 아빠 이야기 좀 하자


 

아줌마 10살 되던해.........
아줌마 아빠 엄청 바쁜 해였어.
아줌마 아빠 집에 잘 안들어왔지?
그때 엄청 바빴거든
아줌마 아빠가 1961년에 진짜 많은 일을 했어.
놀고만 먹는 대통령은 안하겠다가 아줌마 아빠의 모토였나봐.
참 그때는 대통령이 아니었지.
군정이었구나.
어쨌든
엄청 바빴더라구.
요즘 구케의원들이 아줌마 아빠같기만 했으면 좋겠어.
당근 하는 일 내용은 아줌마 아빠같으면 안되지.
부지런함을 이야기하는거야.
오해하지마.

어쨌든
5월에 쿠데타하고 힘들었을텐데.........

참 저번 이야기에서 내가 아줌마 아빠 쿠데타 한걸 넘 간단하게 넘어갔지?
아줌마 아빠도 참 끈질긴데가 있어
아줌마 아빠가 한번에 쿠데타를 성공해버린게 아니야
3번이나 했다니까.
도대체 그 시절은 세상이 어쨌길래 2두번이나 실패하고 3번째 성공을 한대냐?
선거 출마해서 떨어진것도 아니고 쿠데타잖아. 쿠데타.
몰래, 비밀스럽게, 들기면 죽는 역적모의 같은거 아닌가?
나의 쿠데타에 대한 개념에 심각한 헷갈림을 유발한다니까
하긴 '진정한 진주'인 아줌마 아빠가 못할게 뭐 있겠어.
어쨌든
첫번째 시도한게 언제였냐면
이승만 정권의 첫 임기가 끝나게 되었을 때,

이승만이 더 할라구해서 <부산정치파동>이 있었대.
이때 아줌마 아빠를 포함한 울나라 군인 몇명이

쿠데타를 할라구 했는데 실패했대.
두 번째는 이승만 정권 말기에 아줌마 아빠가 또 나타나
근데 4·19 혁명이 일어나고 이승만이 도망가버렸어.
그래서 실패했지
아줌마 아빠는 오뚜기야
포기를 안해
세 번째로 장면 정권 성립 후에 사회가 복잡하다가

61년에 들러서서 사회가 안정될만 하니까
아줌마 아빠가 날도 좋고 기분도 싱숭생숭한 5월에 짱을 먹어버린거지.

아줌마네 집안에서는 5월 16일에 전가족 몰아서 생일 잔치하지?
가족 대대로 가훈으로내려줘
5월 16일에 축제지내라고.
별볼일 없는 아줌마네 집안이 갑자기 대통령 집안이 되버렸잖아.

이야기가 잠깐 딴데로 샛는데
아줌마 아빠가 그 힘든 쿠데타를 하고 노독도 덜풀린 그해 8월에 독일하고 상업차관 계약도 했더라구.
독일은 벌써 3D업종을 안하는 추세여서 외국 노동력이 필요했대.
그래서 아줌마 아빠가 광부와 간호사의 3년간의 노동력을 서독에 파견하기로 한거야.
그리고 이사람들 임금 담보로 서독은행에서 지급보증을 맡도록 한다는 상업차관계약을 했대
한마디로 울나라 백성들 일꾼으로 보내줄테니까 그거 담보 잡고 돈좀 빌려줘라
그거야.
어찌나 멋나게 광고를 했던지 광부 5천명 모집에 응시자 4만명,
간호사 2천명 모집에 2만여명이 지원을 했대.
그리고 1억5천만마르크(3천만달러)를 빌렸대.
그거 빌려다 어디다 썼는지는 나중에 아줌마 아빠 경제 이야기 할때 할게.
워낙 돈 이리저리 빌려다가 황당무계한데 써서 할말이 없더라.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다음해인 1962년 5천명의 광부들과 2천명의 간호사들이 독일로 가게 됐어.
한달 보수로 400마르크에서 700마르크를 받았대.
요즘 돈으로 치면 96,000원에서 168,000원이지.
당시 물가를 몰라서 내가 모라고 말을 못하겠어
아줌마가 나보다 더 나이 많으니까 그때 물가 대비 계산을 좀 해줘
아줌마 바쁘면 여기 드나드는 알바들이 해줘도 좋고.

어쨌든
그 사람들 독일 갈 때 외화 벌어들이는 산업역군이라고
공항에서 행사도 요란했대.

울나라 사람들이 워낙 근면한 사람들이잖아
시간외 근무를 자청해서 허리띠 졸라매고 한국 가족들한테 돈을 부쳤지.
이들은 이런 와중에도 독일 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틈틈이 독일어 공부, 각종 기술 익히기에 여가 시간까지 투자하였고 결국은 독일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교포 사회를 이루었대.
여기까지는 참 보기좋은 그림같지?

거기 갔던 간호사들이 여기 간호사들처럼 백의의 천사처럼 하얀옷에 머리에 캡쓰고
우아하게 챠트들고 돌아다녔냐고?
아니야
독일에서도 제일 험한 일만 했대
말이 통하길 하겠어 어쩌겠어.
시체씻고 환자들 똥 오줌 받아내고
그런 일만 시켰대
거기 간호사들이 안할려고 하는 일만 시킨거지.
내친구 고모는 그때 독일로 간호사로 가서 지금 독일 사람하고 결혼해서 살아.
성공했다고?
같이 갔던 친구 중에서 두명이나 자살했대.
돌아올 수도 없고 말도 안통하고.
여러 병원에 한명씩 나눠서 배치해서 자주 만나지도 못했대.

그 고모는 지금 뭐하냐고?
거기서 애 둘 낳고 사는데
지금까지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한국에 한번도 안들어왔대
애들한테 한국말도 안가르친대.
우리나라에도 외국 노동자들 들어와있으니까 아줌마도 알지?
우리가 그 사람들 사람 취급이나 해?
우리나라 사람들 안하려는 일만 시키고
사람 대접 안해주잖아.
거기서도 똑같았대
그래도 열심히 일했대
그나라 사람들 우리나라사람 만큼 외국인 노동자천대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대
우리나라에 와있는 외국인 노동자보다는 견딜만 했대

근데 그사람들이 제일 힘들었던 것이
지하탄광의 힘든 노동이나 더럽고 천한일 때문이 아니었대
거기 독일 사람들이 우리나라 간호사나 광부 열라 무시했대
황인종이라고?
아니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미개한 나라,
타국에 동포를 팔아서 경제 개발 하고
월남전에 백성팔아먹는 나라
그 소리 듣는게 죽는것보다 더 싫었대
제일 비참했대

서독에 갔던 광부들과 간호사들은 그래도 간호학교라도 나온 사람들이고
머리에 든게 좀 있는 사람들이었대
아줌마 아빠가 자기들 목숨 걸고 수천 미터 지하에서 석탄을 캐고 있는 임금을 담보로 해서
서독정부로부터 돈을 빌린다는거 다 알고 있었대.
아줌마 아빠가 서독에 간 적이 있었는데 아줌마 아빠 오면 공항에서 똥물이라도 덮어씌우려 했대.
근데 대사관에서 협박했대

한국에 있는 가족들 가만히 안두겠다고.
그리고 결정적인건 관객들이 있잖아
독일넘들이 머라고 하겠어.
집안 싸움 보이기 싫고 또 대통령이랍시고 환영하고 반가와 해야지 국제 외톨이가 된 조국의 번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 환영하고 어쩌고 했대.
그걸보고 어떤 넘은 다들 아줌마 아빠 엄마를 잡고 엉엉 울면서 넘넘 행복하게 환영했다고 글쓴 넘도 있더라
미친넘들.

근데 아줌마 아빠는 그 사람들 외국인취급하면서 참정권도 안줬대

그후에 그사람들 어떻게 됐냐고?
한국에 있는 사람들 처럼 아줌마 아빠가 거느리는 경찰, 안기부 이런 사람들없어서
국제 정세도 알고 객관적 사실이나 정보도 많이 아는 최대의 엘리트 교민집단이 됐대
당근 아줌마 아빠 엄청 싫어했지.
아줌마 아빠 진짜 치떨리게 싫어했대
아줌마 동백림 사건이라고 알아?
동베를린 사건이라는 건데...... .
아줌마 아빠가 한 나쁜 일중에 하나야
다른 일들에 비하면 껌값이지.
어쨌든 아무 상관없는 서독의 교민들까지 이 사건으로 엄청 다치는 일이 생기게 돼.
이건 다음에 얘기해줄게

오늘 쉬는 날이어서 몇개 더 쓸라고 했는데
지쳐서 안되겠다
아마 아줌마 아빠 이야기 다 쓸려면 100개도 넘을거야.
괜히 시작해서 숙제만 하나 생긴 기분이다.
어쨌든
아줌마
이글 좀 읽어
아줌마하고 아줌마 골빈 지지자들 읽으라고 엄청 쉽게 쓰고 있으니까
(단어도 웬만하면 초등학교 4학년 이상 안넘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공부 좀 해.

캡사이신/마이클럽

 

수석 졸업하는 박정희 생도 신경군관학교 2기생 예과 졸업식에서 박정희는 우등상을 받고 부상으로 부의 황제 명의의 금시계를 하사받았다. 대열 앞에서 생도 대표로 인사하는 사람이 박정희다. 졸업식장에서 재학생의 송사에 답하는 졸업생 답사를 낭독했는데, 그 답사 내용 중에는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휼륭하게 죽겠습니다."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滿洲日報 194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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