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심이 애국/박정희

박근혜 아짐마, 아짐마 아빠 이야기 좀 하자 11

반응형


본 포스트는 '마이클럽'이라는 곳에서 필명이 '캡사이신'(본명 송강희)라는 40대 주부님이 올린 글입니다. 그 당시 이 시리즈는 많은 인기와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으면서, 마이클럽이란 사이트도 많이 알려지고, 정치에 관심없던 여자분들도 한번정도는 읽어봤을 만큼 이슈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이 글을 스크랩했다가 이제 오픈하는 이유는 요즘 조선일보가 기획특집으로 '기억의 정치'라는 코너를 마련했기에 저도 따라서 이 글을 오픈해 봅니다. 제가 마음 내킬때 조금씩 공개해 드리겠습니다. 대중적인 화법으로 상당히 흥미있게 작성되어서 읽는 재미도 있고, 여러가지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리즈물로서 처음부터 보시려면 '관심이애국' 카테고리 아래 '박정희' 카테고리를 확인하시면 됩니다.
 



 

박근혜 아짐마, 아짐마 아빠 이야기 좀 하자


 

인혁당2차사건 이야기 할려면 이야기가 길어져.
유신 이야기도 해야되고 민청학련이라는 사건 이야기도 나와
천천히 다 얘기하지 뭐
남는게 시간인데 뭘.
그리고 나 손가락 관절염 걸리면 아줌마가 한달에 100만원씩 줄거고.
그건 약속한거지?

그럼 하나씩 이야기 해보자.
일단 아줌마 아빠 대통령 이야기부터........

아줌마 아빠가 대통령 몇번 한줄 알아?
딸이니까 모른다고는 않겠지?
5,6,7,8,9 다섯번
많이도 했지?

61년 쿠데타를 시작으로
63년에 5대 대통령을 한번 해.
그다음 67년 6대, 이렇게 대통령 두번을 해.
근데 문제는 더이상 대통령을 못한다는거야
왜냐구?
대통령은 두번밖에 못하거든
법에 그렇게 되어 있었대.
그럼 어째야되겠어?
집에 가야되겠어?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데
아줌마 아빠는 보통 사람이 아니잖아.
혈서. 혈서를 생각해봐.
그것 하나만 봐도 난 아줌마 아빠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봐
어쨌든
3번째 할려면 아무리 아줌마 아빠가 막가파라도 헌법을 좀 손봐야되겠지?
이번에 아줌마도 탄핵 해봤으니까 알겠지만
국회의원 쪽수가 중요하잖아.
그래서 그해 6월에 치르는 7대 국회의원 선거가 중요해진거야.
국회의원 3분의 2를 차지해야지 법을 고쳐서 아줌마 아빠가 대통령 또 할 수 있거든.
그래서 엄청난 부정행위를 하게돼

우리 할머니가 그때 선거 하러 간거 아직까지 기억하더라.
동네 면장인지 누군지가 고무신이랑 비누랑 돌리면서
누구 찍는지 다 볼 수 있으니까
잘하라구 했대
우리 할머니가 기표소 들어가서 찍을라다 위를 보니까
누가 내다보고 있더래
우리 할머니 한 성질 하거든.
국민학교도 못나온 양반이 부당한건 또 못참아요.
소리소리 지르고 난리를 쳤대.
남 투표하는데 왜 내다보냐고.
동네가 다 뒤집어져서 군청에서 사람이 나오고 면장이 쌀 한말 가지고 오고 난리가 났대
울 할아버지는 우새시러워서 못살겠다고 남들 하는대로 조용히 하지 왜 그러냐고 울 할머니 구박하구 그랬대.
울할머니 귀엽지?
우리할머니가 좀 특이해.
팔순 넘으셔서도 꼿꼿하게 박정희 욕을 우리 젊은 것들보다 더 논리적으로 하는 양반이야.
우쨌든
우리 할머니는 그랬지만 동네 사람들 다 찍었대
그래서 아줌마 아빠는 국회의원 3분의 2를 성공적으로 넘기게 돼
그리곤 1969년에 들어 3선 개헌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거야.
다른 국회의원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겠지?

이번 탄핵해봤으니까 알거야.
울며불며 개기면서 꼭 끌려나가야 정신을 차리잖아.
어쨌든 그날의 아줌마의 미소는 영원히 잊지 못할거야.
모나리자 미소는 저리가라야.
아줌마 그 사진 내 컴에 꼭꼭 저장해뒀어.
아줌마가 아줌마 아빠 혈서 안보여주니까 대신 그때 아줌마의 미소 우리 집안 가보로 물려줄게.

국회 본회의장에서 야당 의원들이 농성을 벌이니까
개헌·지지서명을 했던 122명의 의원들이 국회 3별관에서 자기들끼리 모여서 개헌안을 날치기 통과시켜버려.
그땐 생중계를 안했어.
왜 그랬냐고?
그때가 일요일 새벽 2시 30분이었거든
그때는 통행금지 있었잖아.
기자들이 일요일에 통행금지 돌파하고 거기까지 갈 일이야?
어쨌든 진짜 열심히 일하는 자랑스러운 울나라 구케의원들이야.
아줌마 아빠는 늘 새로운 전기를 이룩하는 경향이 있어.
지금 딴나라나가 주로 하고 있는 일들 다 아줌마 아빠한테 배운거야.

그래서 대통령 3번째 무사히 했냐고?
그 이야기는 담에 하자.
이야기가 넘 길다.
인혁당 2차 이야기 나오기 전에 글 세개는 써야될거 같아.
이게 모냐고요
나도 쉬는날 좋은 생각하면서 좀 편안하게 쉬자구요.
이 날좋은 5월에 꾸질꾸질하게 아줌마 아빠 이야기나 하고 있어야겠어?
아줌마가 책임져야돼
달마다 100만원 알쥐?
그것만 꼭 믿고 있을게^^
그럼 다음에 봐

 

캡사이신/마이클럽

 

수석 졸업하는 박정희 생도 신경군관학교 2기생 예과 졸업식에서 박정희는 우등상을 받고 부상으로 부의 황제 명의의 금시계를 하사받았다. 대열 앞에서 생도 대표로 인사하는 사람이 박정희다. 졸업식장에서 재학생의 송사에 답하는 졸업생 답사를 낭독했는데, 그 답사 내용 중에는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휼륭하게 죽겠습니다."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滿洲日報 1942.3.2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