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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감상문

소문의여자, 범죄는 있고 스릴러는 없는 일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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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소문이 많은 여자를 사귀어 본 적이 있는가. 보통 그런 여자들은 인기가 많다. 그래서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인기 만큼 불안함을 동반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잘 파악이 안된다. 그래서 소문의 여자는 안개 속 여자다. 연쇄 살인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소문의 여자>를 읽다보면 내가 안개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같은 자리를 맴돌다 집에 이르는 길을 잃어버리는.








 그 여자의 열가지 모습


나는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릴러 소설을 읽었을 때의 느낌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가볍고 직설적인 문체는 생각보다 술술 읽혀서 '히가시노 게이고'와는 또다른 맛이 있었다. 나쁘지 않았다. 책을 빨리 못읽는 습관을 가진 나지만 페이지는 빠르게 넘어갔고 '소문의 여자'인 이토이 미유키는 서서히 내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그녀가 우리에게 10개의 단서를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목차

1. 중고차 판매점의 여자
2. 마작장의 여자
3. 요리교실의 여자
4. 맨션의 여자
5. 파친코 점의 여자
6. 야나가세의 여자
7. 기모노의 여자
8. 단가의 여자
9. 비밀 수사의 여자
10. 스카이트리의 여자

 





 그들만의 리그


'사는게 다 그렇지'라는 체념처럼 사람의 기분을 잡치는 것도 없다. 세상 그 어디 구석에도 깨끗한 곳이 없으며,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굴복이고 굴욕이다. 나혼자 반듯하게 살려고 노력한들 알아 주는 사람도 없는데,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양심이나 정의를 주장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토이 미유키'처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사는 것이 죄는 아니다. 오히려 현실은 이렇다. 돈과 권력으로 온갖 특혜를 누려온 그들만의 리그에 동참해서 나눠 먹을 수만 있다면 미유키의 검은 매혹도 큰 능력이라며 부러워하겠지. 


지방에서 공무원이 얼마나 큰 이익을 보는지 알고 화가 나기도 했고 동시에 자신이 공무원의 아내가 된다는 행운에 솔직히 기쁘기도 했다. - page 123 -





 반전과 가벼움





<소문의 여자>는 가볍게 쭉쭉 치고 나가는 문체라서 흡입력이 좋다. 조용하고 착했던 '이토이 미유키'라는 여자가 어느날 미스터리한 꽃뱀으로 등장해서 돈많은 남자를 유혹해서 풍족한 생활을 누린다.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센스있는 말솜씨와 관능미를 가진 여자로 변신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살인 용의자다. 자신의 주머니가 채워지고 더 이상 남자가 필요없게 되면 깨끗하게 정리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속에서 '살인'은 중요 요소가 아니다. 그녀와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엮이는지 10가지 상황만 있을 뿐이다. 미유키는 주인공이 아닌 것이다. 이것이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그들의 소행은 엄밀히 말하면 죄지만 슬쩍 눈감아 줘도 그리 큰 영향은 없는 소소한 죄 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그런 소소한 욕망을 그려 내면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부각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 저자 오쿠다 히데오 -


위 작가의 말처럼 <소문의 여자>는 현대인의 일그러진 모습을 담고 있다. 사실 열가지 상황은 열가지 비리 또는 꼼수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이고 그 모두는 서로 연결 되어 있다. 그러나 범죄스릴러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무게감이 없다. 물론 중반까지는 재밌고, 호기심이 활활 타오르지만 서서히 힘이 빠지고 결말에 다다르면 '이건 무슨 소설이지?'라는 의문점까지 떠오른다. 생각해보라. 클라이막스가 없는 범죄스릴러 소설이 진짜 재밌다고 느껴질지.





 세상이 험해서 뉴스를 통해 매일 죽어나가는 사람을 볼 수 있다고 해도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매우 심각한 일이다. 범죄소설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적어도 독자에게는 결론부분에서 갈등이 해소되는 감정을 줬어야했다. 차라리 에피소드가 진행될 때 마다 양파 껍질처럼 그녀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는 구성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소문이 의문점만 잔뜩 생산하고 가동을 멈춘다면 참으로 허무하지 않은가. 


책띠에 적혀있는 카피도 궁금하다. '통쾌한 범죄 스릴러', '응원해주고 싶은 팜므파탈', '그녀의 진실은 무엇인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책의 내용과는 크게 관련이 없어보인다. 통쾌하지도 않았고, 응원해주고 싶은 이유도 모르겠으며, 그녀의 진실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비뚤어진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한 여자의 반란'이라고 했으면 고개라도 끄덕여 졌을 것이다. 남자를 유혹하는 미유키는 있었지만, 독자를 유혹하는 미유키는 없었다. 다음 작품은 좀 더 치밀하고 찰지게 독자를 유혹해줬으면 한다. 독자는 언제나 작은 일탈을 꿈꾸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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