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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감상문

롤리타, 로리타컴플렉스를 탄생시킨 명작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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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Lolita). 그 당시 미국 출판계에서도 거부당해서 첫 출간은 포르노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나와야 했던 소설. '로리타'라는 섹시한 단어를 잉태한 소설. 한때 금서였던 이 소설을 향한 한국 남성 독자들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던 소설. 전 세계적으로 현재까지 5천만부 이상 판매되었다는 그 '롤리타'를 드디어 내 손에 움켜쥐게 되었다. 그리고 한 줄도 놓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그녀를 읽어내려갔다. 부드럽게. 그리고 섬세하게.

(스포일러 없음)





 



 얼마나 야할까? 야한 상상은 무죄!

 

바로 찬물을 끼얹기는 미안하지만, 소설 '롤리타'는 포르노그래피와는 거리가 좀 멀다. 남자 독자라면 은연 중 어린 소녀와의 뜨거운 만남을, 깊고 노골적으로 느껴보고 싶었겠지만 말이다. 중년 남성과 10대 소녀의 만남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고작 그정도 였기 때문에 우린 독자 수준으로 머물러 있는 것일테지. 러시아 망명 작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이하 나보코프) 역시 주인공 '험버트 험버트'(HH)가 변태적인 정신병자로 보여지길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3류 작가이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소설 롤리타는 전체적으로 탐미주의적 관점으로 그려졌다.


 



12살 소녀에 대한 불온한 스토리 자체가 이미 선정적이지만 뭇남성이여, 욕망을 접으라! 앞서 말했든 작가는 아름답고 위트있게 그려내는 방식을 취했다. 다 벗은 여자가 뇌쇄적인 눈빛으로 유혹하는 것보다 속살이 보일듯 말듯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살빛이 드러나는 검정색 스타킹 안에 감춰진 늘씬한 다리가 자신과 한 뼘 거리에서 살랑거릴때.....남자의 몸 속에 불이 활활 타오른 다는 것. 그것은 요즘 여자들도 이미 아는 사실 아닌가. 나 역시 활자 속에서 몇번이나 조심스럽게 침을 삼키곤 했지만, 작가가 그려준 지도를 따라 갔을 뿐 나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 여러분도 그 무죄를 맛보길 바란다.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 비비적거릴때마다 일어나는 잔물결 하나하나가 나를 도와주고, 그 덕분에 미녀와 야수 사이에 촉감이 전달되는 은밀한 교감체계를 감추면서도 더욱더 촉진시킬 수 있었다. 곳곳이 옴폭옴폭 들어간 몸을 때묻지 않은 무명 원피스로 감싼 미녀, 그리고 이를 악물었지만 금방이라도 터져버릴듯한 야수.

- page 98 -

 



 험버트는 저주받아 마땅한 소아성애자일까

 

'중년 남성이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10대 소녀와 지속적인 성관계를 가졌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험버트와 롤리타(원래 이름은 돌로레스 헤이즈)의 관계를 설명하기에는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험버트는 비난받아 마땅하며 그 대가를 치뤄야 하겠지만 변치 않는 사실이 하나 존재한다. 험버트는 정말로 롤리타를 사랑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아이에게 먹이려고 분유 한통을 훔치려다 철창 신세를 진 가난한 엄마가 현실에 존재하는 것 처럼. 사실 험버트는 소심하고 고독하고 불쌍한 남자일 뿐이다.

 

 

▶ 1997년 영화 '로리타'의 한 장면 (나의 추천 영화다.)

 

로리타 컴플렉스. 다른 말로 하면 로리타 신드롬, 소아성애자, 소아성도착증, 피도필리아, 소아성기호증 등으로 일컬어진다. 내가 아는 한 저 단어들은 모두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다만 '로리타컴플렉스', '로리타신드롬'이라는 말은 비공식 의학용어지만 가장 대중적으로 쓰인다. 그만큼 이 소설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그들은 납치와 강간, 아동매춘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하며, 소극적으로는 사진수집, 화상채팅, 아동포르노물 등을 보면 자위하는 것으로 그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험버트는 저런 정신병자들과 많이 다르다. 그는 강간범도 아니고 강제성추행범도 아니다. 험버트의 행위를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을 읽어봤다면 내 말을 이해할텐데, 소설 속에서 롤리타를 향한 험버트의 사랑이 얼마나 지고지순했는지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노래 가사처럼 '세상이 허락하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번민 속에서 괴로워하는 험버트가 자주 등장한다. 즉, 험버트는 자신의 감정과 행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나는 경솔하고 어리석고 비열했다. 하지만 아주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그 캄캄한 혼돈의 밑바닥에서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욕망을 느꼈다. 이 가련한 님펫을 향한 나의 욕망은 그토록 모질었다. 지독한 죄책감, 그리고 지금이라도 마음편하게 차를 세울 수 있는 호젓한 시골길을 만나면 다시 정사를 나누고 싶은데 그녀의 기분 때문에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그 두 가지 감정이 뒤죽박죽 갈마들었다. 다시 말해서 험버트 험버트는 몹시 비참한 상태였다. -page 225-

 

 



 롤리타도 험버트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다소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인데....결론부터 말하자면 롤리타도 험버트를 '사랑할 했다'고 나는 느꼈다. 롤리타는 인간 험버트를 좋아했다. 이성으로서의 감정은 아니었다. 먄약 둘의 사이가 계속 좋아졌고 세월이 흘러서 롤리타가 성인이 되었다면, 어쩌면 두 사람은 특별한 사이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험버트는 단 한번도 완력으로 그녀와 섹스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불면 날아갈까 쥐면 깨질까 전전긍긍하며 애정을 키워갔다. 12살 소녀가 성인 남성과 순순히 섹스에 응했다. 처음에는 그녀 스스로 주도하기도 했다. 문제는 여기에 숨어있다. 어머니를 잃고 의지할 데라고는 험버트 뿐이었던 사춘기 소녀의 성적 호기심과 반항심. 하지 말라면 더 해보고 싶은 것. 성인으로 인정받기 전에 미리 선수쳐서 어른 흉내를 내보는 것. 롤리타에게 섹스 또한 그러했으리라. 다만, 그것이 앞으로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롤리타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고 싶었던 어른으로서의 험버트 역시 알려주고 싶지 않았고, 알려줄 수도 없었던 불가능 영역이었다. 어쨌든 험버트에게는 롤리타만이 최고의 가치였으며 살아갈 이유였으니까.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pgae 17-

 

 

 국경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사랑도 '나이' 앞에서는 꼬리를 내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험버트에게 연민을 느끼는 이유는 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숙한 인간'을 나이로 구분짓고 살아가는 인간 세상에서는 성적 욕망이 없더라도 어린 소녀를 사랑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하물며 1955년에 이 책이 나왔으니 저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앞서가도 너무나 앞서갔다. 뭐 그 덕분에 우린 험버트의 행복과 슬픔을 훔쳐보는 행운을 얻었지만 말이다.

 

내가 왠만하면 '두번 이상 읽어볼 가치있는 소설'이라는 주장을 조심해서 사용하는 편인데 이 책 앞에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야릇한 것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는 것으로 족하다. 미쳐 수집하지 못한 험버트의 다채로운 감정을 찾아볼 사람은 두번 읽고, 작가지망생이라면 세번을 읽어봐도 아깝지 않을 시간이 될 것이다. 다소 난해한 부분도 있으나 문장이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저자의 뛰어난 언어유희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소설에서 교훈을 찾겠다는 선생님 마인드는 사절이다. 이건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격인 저자의 권고사항이기도 하다.

 

나는 교훈적인 소설은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다. '롤리타' 속에는 어떠한 도덕적 교훈도 없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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