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김덕룡, 박근혜와의 결별
▶ ‘디아르(DR)’. 김덕룡 민화협 상임의장은 2004년 제17대 국회 초기 야당인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냈습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지요. 두 사람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한나라당을 함께 이끌며 말 그대로 ‘동고동락’하는 사이였습니다. 두 사람은 왜 갈라섰을까요. 힌트는 정수장학회. 당시 한나라당의 박 대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곳의 이사장직을 함께 맡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 “정수장학회 풀고 넘어가자”
의견 냈더니 얼굴 굳어져 마치 철벽 앞에 선 느낌이었다.
박 후보에겐 과연 친구가 있나. 주변 사람에게도 전혀 못 들어.
참모들이란 사람들조차 박 후보가 주요현안 판단할 때 누구와 상의하는지 모른다 말해.
김덕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상임의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상도동계’의 핵심이다. 2007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캠프에서 박희태·이상득·이재오 의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등과 함께 ‘6인회’를 형성하는 등 이 대통령의 ‘멘토’ 가운데 한명으로도 꼽힌다.
김 상임의장이 지난 10일 지지한다고 밝힌 대선 후보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아닌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였다. 이날 김 의장의 지지선언에는 문정수 전 부산시장, 최기선 전 인천시장, 심완구 전 울산시장, 이신범·박희구 전 의원 등 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르던 정치인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김 상임의장은 13일 오후에 한 <한겨레> 인터뷰에서 박근혜 후보를 가리켜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상임의장은 오늘날의 시대정신으로 ‘소통’과 ‘통합’을 꼽으며 “박 후보를 가리켜 흔히 ‘불통’이라 하는데, 나는 불통을 넘어 ‘먹통’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서울 서초구에 있는 김 상임의장 개인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박 후보는 ‘불통’을 넘어 ‘먹통’
-김덕룡 상임의장의 문재인 후보 지지를 의아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박근혜 후보가 2004년 한나라당 대표를 지냈을 때 김 상임의장은 원내대표를 맡아 함께 당을 이끌지 않았나?
“사실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의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은 것을 전제로 한 국민정당을 만들고, 안철수 전 후보로 상징되는 정치쇄신 세력 및 미래세력, 그리고 민주화 세력과 중도세력이 모두 함께하는 국민통합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내 제안을 모두 수용했을 때 깊은 신뢰가 생겼다. 그 뒤 주변의 많은 지인은 ‘이제 할 도리는 했으니 가만 계시라’고 조언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문 후보가 앞서고 있었다면 나서지 않았겠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해 민주주의가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세상 밖으로 끌어냈다. 그만큼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르는 중요한 선거다.”
-문재인 후보와의 정치적, 개인적 인연도 궁금하다.
“그와 나는 동시대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으나 서로를 알지는 못했다. 1987년 6월 민주화투쟁 당시 나는 서울에 있는 중앙국민운동본부에서 일했고, 문 후보는 부산국민운동본부에서 일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멀리서 서로 경외하는 사이였을 뿐, 특별한 인연은 없었다.”
-김 의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오랜 측근이다. 김 전 대통령은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것 아닌가?
“내가 김 전 대통령을 20여년간 비서로, 또 비서실장으로 가까이 모셨다. 누구보다 그분 마음을 잘 읽는다고 자부한다. 김 전 대통령께서는 공식적으로 누구를 지지한다고 밝힌 일이 없지만, 나는 김 전 대통령도 나와 같은 심정이시라 믿는다. 다만 ‘내가 누구를 지지합니다’는 식으로 의논을 드리는 것 자체가 도리가 아니라 생각했기에 사전에 (문 후보 지지를) 말씀드리지는 않았다.”
-문 후보와 박 후보를 비교한다면 김 의장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쪽은 박 후보 아니었나. 박 후보는 대통령감이 아니라 본 건가?
“물론이다. 나는 2004년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하며 당시 당 대표였던 박 후보와 함께 일했다. 여야의 갈등이 대단히 깊던 그 시기에 박 후보와 숱하게 만나고 대화했기에 감히 내가 다른 누구보다 그를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인데, 내가 왜 그에 대한 부정적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는 국민들이 잘 헤아릴 것이라 본다.”
-이를테면 어떤 것인가?
“박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태어나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으로 살아왔다.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다. 나는 박 후보에게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다른 사람에게도 누가 그의 친구인지, 과연 친구가 있기나 한 건지 전혀 듣지 못했다. 박 후보 주변의 이른바 참모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박 후보가 주요 현안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누구와 상의하는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박 후보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의 문제도 있다. 거의 모두 박 전 대통령 시절인 제3공화국이나 전두환의 5공화국 인사들 아닌가.”
-2004년 한나라당을 함께 이끌 때 박 후보와 김 의장은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한 해법을 놓고도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고 있다.
“맞다. 나는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 박 후보에게 정수장학회 문제는 절대적으로 풀고 넘어가야 한다고 진심으로 조언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그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서라도 정수장학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 것인데, 이런 내 의견을 다 듣고 난 뒤 얼굴이 굳어지는 모습을 봤다. 마치 벽, 철벽을 앞에 놓고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내 의견을 거부한 것은 물론 그 뒤 아예 나를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졌다. 거기서 그 사람의 한계를 느꼈다.”
보수는 최악의 후보를 선택한 것
-정수장학회 문제가 왜 중요한가?
“정수장학회가 장물이라는 것은 이제 천하가 다 안다. 당시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먼저 장물을 내놓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의 상식이다. 그런데 박 후보는 지난 10월21일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에서도 정수장학회의 전신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씨를 겨냥해 ‘친일파’, ‘부정축재자’라는 논리로 되레 비난했다. 그럼 부정축재자와 친일파의 재산은 누구든 법적 절차와 관계없이 권력으로 빼앗아 사유화해도 된다는 것인가. 내가 박 후보에게 말한 게 바로 그런 거다. 정수장학회 사회환원은 그가 과연 아버지의 과거 잘못을 시정할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박 후보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사’ 가운데 하나가 정수장학회 문제다. 그런데도 그가 정수장학회 사회환원에 대해 여전히 소극적인 이유는 뭐라고 보나?
“나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명예도 갖고 재산까지 모두 갖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욕심이라기보다 어리석음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소통과 통합이다. 박 후보를 가리켜 흔히 ‘불통’이라 하는데, 나는 불통을 넘어 ‘먹통’이라 생각한다.”
-국민통합은 박 후보도 내세우는 가치다.
“통합을 하려면 우선 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이 포용이다. 자기중심적이고 권위적인 박 후보는 소통을 모른다. 당연히 포용의 리더십이 부족하다. 통합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선이 며칠 남지 않았다. 김 의장이 보는 대선 전망은?
“누가 중도층을 더 끌어오느냐의 싸움이 될 것으로 본다. 20~30대 젊은 유권자의 투표율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일부 언론은 이번 대선을 보수와 진보의 싸움으로 몰아가려 하는데 선거는 투쟁이나 전쟁이 아니다. 나는 대통령 후보라면 정반대 쪽에 선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중도까지는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가능성이 더 열려 있는 쪽은 문재인 후보라고 생각한다. ‘잘못 만들어진 완성품’ 같은 박 후보보다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고 ‘여백’이 있는 문 후보가 국민들의 바람과 의견을 수렴할 수 있을 것이다.”
-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그것도 국민의 선택이다.
“나는 그가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박정희 군사정권 시기의 퍼스트레이디를 지낸 독재자의 딸, 유신공주라는 사실 이외에 대통령의 자격이 될 만한 그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분열과 대결의 정치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 양극화와 남북문제, 노사갈등 등을 해결하려면 국민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김용갑 새누리당 상임고문은 김 의장을 가리켜 ‘치사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 의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6인회’로 불리는 참모그룹에 속해 있었고, 새누리당 텃밭인 서울 서초구에서 5선 국회의원을 하는 등 혜택을 받아왔는데, 그런 측면에서 ‘배신’ 아니냐는 것이다.
“말이 아니면 듣지 말고,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했다. 그런 분 이야기는 아예 듣지 않은 것으로 하고 싶다. 나는 개혁적 보수로서 군부독재 세력을 보수로 인정한 적이 없다. 자신은 보수이기 때문에 박 후보를 지지한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면 보수는 최악의 후보를 선택한 것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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