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홍선/출연 임창정, 최다니엘, 오달수, 조윤희 외
귀신도 피해 갈 악마같은 사람들. 영화 속 현실에서 진짜 공포를 보았다. 배신과 반전의 플롯은 흥미로왔고, 내용 전개는 매우 빨랐다. 기대 이상의 영화였다. 다만, 영화적 완성도는 2%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시간이 아깝지 않을 영화다. 또한 처녀작이 이정도라는 것은 김홍선 감독의 열정과 가능성을 가늠하기에 충분했다. '좋은 영화'는 각 분야 스태프와 배우들이 한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고, 그것을 조율하는 힘은 감독에게서 나오니까. 장기밀매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라서 더욱 소름끼쳤던 '공모자들'. 그 속으로 들어가보자. (스포일러 없음)
영규(임창정)는 평범한(?) 밀수업자다. 3년 전 장기밀매 작업 중 동료 형님을 잃고 난 후 장기밀매는 손을 뗀 상태. 그러나 세상은 그에게 돈을 요구했고, 반강제적으로 장기밀매에 가담하게 된다. 영규에게 큰 돈이 필요했던 이유는 갚아야 할 빚 때문이기도 하지만,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듯. 재밌는 설정이다. 무고한 사람의 장기를 팔아 돈을 벌고자 하는 인간에게 순수한 사랑이라니. 여기서 인간의 재밌는 특징이 나온다. 영규는 보수적이며, 누군가에게 따듯한 마음을 품고 있고,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가 폭력을 휘두르고 불법적인 일을 하면서도 당당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자신이 그렇게 나쁜 남자는 아니다'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합리화만 된다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다. '나로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명분에 확신이 생기는 순간, 길은 오직 하나만 보이는 것이다. 그 앞에서 법은 그저 빈 깡통일뿐. 그래서 영규 역시 악마이며, 약간의 연민도 불필요한 것이다.
유리(조윤희)는 여객선 티켓 창구 직원이다. 출발 인원, 출항시간, 도착 시간, 금액등을 알려준다.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피곤한 일이다. 밀수업을 하는 영규가 유리와 자주 만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유리는 영규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아니, 영규를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 장기 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버지 앞에서 모든 것은 사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리는 효녀다. 그래서 아버지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 남은 돈 전부를 털어 장기밀매 업자와 모종의 계약을 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장기이식을 위한 중국행 여객선에 몸을 싣는다.
상호(최다니엘)는 보험회사 직원이다. 그의 사무공간과 책상을 봤을때 간부급은 아니다. 매달 동료들과 실적 경쟁을 벌여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는 성실하며 친절하다. 사랑하는 아내(채희 역: 정이윤)를 위해 중국 여행을 직접 계획한다. 불행한 일이 코 앞에 있지만 상호로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 결국 중국 공해상에서 영규 일당에게 휠체어 탄 아내는 납치되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호는 울부짖으며 아내를 찾는다. 물론 아내는 이미 심장이 적출되어 차가운 바다에 버려졌다.
중반까지의 줄거리는 여기까지이고, 심장을 운반하려던 영규의 계획은 지금부터 서서히 허물어져간다. 각기 다른 목적으로 장기밀매에 가담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이 영화에는 2개의 반전이 준비되어있다. 하나는 영규(임창정)의 반전, 또 하나는 상호(최다니엘)의 반전이다. 다행스럽게도 한 인물에 대한 반전의 반전이 아니라, 별도의 반전이 준비되어 있는 점이다.
아쉬운 점은 그것이 영화의 재미를 올려주었지만, 스토리가 약간 꼬이고 복잡한 느낌을 준 것도 사실이다. 감독이 말했던 것 처럼 편집을 통해 10여분 가량 삭제되면서 약간의 흐름이 깨진 탓이다. 또하나는 반전의 충격이 다소 약했다는 점. 그 중에서도 상호의 반전은 순두부같이 부드러웠다. 연출의 문제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최다니엘에게 어울리지 않는 배역이었다고 생각한다. 칼끝 같은 개성이 도드라지는 배우였다면 영화는 분명 좀더 나은 완성도를 보였을거다.
그 외 양아치 동배로 나왔던 신승환의 연기는 정말 일품이었다. 주연 같은 조연으로 영화에 몰입하는데 상당히 기여했다. 또한 신인이면서도 과감하게 노출 장면을 찍었던 채희 역활의 정지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영화 내용 상 노출은 빠질 수 없는 부분이었으며, 울먹이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연민이 생겼으니까. 술과 여자를 밝히는 오달수....뭐 이 배우는 어떤 배역을 주어도 100% 소화하는 사람이다. 개성 강한 역활에 이 배우 만큼 잘 소화하는 배우는 많지 않다.
임창정은 그동안 보여준 코믹 연기 대신 처음으로 무게감있는 배역을 받았다. 배우가 자신의 색깔을 바꾼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최다니엘만 봐도 알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그의 변신이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축하한다.
요즘 처럼 영화산업이 불황인 때에 처녀작이 손익분기점을 넘겼다는 것은 참 의미가 크다. 관람객수가 160만명에 육박했다고 하니 가시적인 성과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동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든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신혼부부가 배위에서 실종되고 장기가 사라진체 발견된 것, 장기 이식을 위해 중국으로 갔지만 사기를 당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던 것 등이 그렇다. 정말 무서운 것은 한 사람이 벌이는 단독범행이 아니라 한 사람의 희생자를 만들기 위해 여러명이 스스로 악마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악마와 결탁한 공모자들. 그들의 끝은 어디이며,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돈만 벌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질병 수준의 집착은 어쩌면 사회의 주류들이 만든 독버섯이 아닐까. 자신들의 권리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날것 같으면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정치인들이나 경쟁 속 성장만 외치고 공정은 외면하는 대기업, 온갖 편법으로 남의 이익을 갈취하는 기타 기득권층.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는 '법' 만큼 '윤리'라는 잣대가 힘을 가진 나라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세상을 약육강식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것이 변화와 성장을 담보한다고 믿거나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내가 생각할 때 당신들이 바로 영화 속 공모자들과 다를바가 없으며, 피눈물이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 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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