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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감상문

우리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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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우리집의 조용한 저녁...
하루 중 내게 가장 행복한 시간. 잠들기 전에 침대에 비스듬하게 누워서 책을 읽는 것. 매일 밤 어둠 속 작은 스탠드의 불빛을 받아서 사그락~....사그락~  종이 넘기는 소리가 살아나는 시간이지요. 그럴때면 우리집 양순이(고양이)가 침대 밑으로 소리없이 와서는 하루의 일과가 마감된 것을 아는듯 바닥에 몸을 내려놓고 지그시 눈을 감습니다.


온전하게 책이 주인이 되는 시간..
그리고 내 손에 들린 분홍빛의 작은 책... 『우리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소설에 대한 저의 총평은 비유적으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아주 화창한 어느 봄날 오후, 나는 들뜬 마음으로 새로산 치마를 입고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에 올랐습니다. 몇층을 내려가다 문이 열립니다 그런데 앞에 있는 그 남자...고개를 숙인채로 한손에는 장미꽃다발을 또 다른 손에는 피묻은 칼이 들려있습니다. 그의 몸이 한쪽으로 기우는가 싶더니 엘리베이터로 발 한쪽이 들어옵니다. 엘리베이터 문은 닫히기 시작합니다.


일본 특유의 묘한 분위기가 있는 공포소설 입니다.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라는 온다리쿠의 작품으로 2005~2009년 괴담전문잡지 '유(幽)'에 연재되었던 글이라고 합니다.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었지만 모든 내용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고풍스러운 '우리집'에서 일어나는 기괴한 일들이죠. 이 책을 읽으면서 '무섭다', '소름끼친다'라는 느낌은 사실 없습니다. 다만 다소곳한 문맥 속 중간중간에 숨어있는 서늘한 바람이 손끝을 통해 가슴으로 전달됨을 느낍니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그 바람의 길을 따라 그 집안으로 걸어가는 자신을 보게 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매력은 충분한 소설입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집. 언덕 위에 있어서 멀리서 보면 한폭의 그림처럼 운치가 있습니다. 어찌나 평화로운지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것 처럼 스산할 정도 입니다. 사과파이 냄새가 집 밖으로 흘러나오고 아이들과 어른들의 발걸음이 꾸준한데도 살가운 웃음보다는 공허한 바람만이 주변을 감싸고 있습니다. 대체 저 집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요.


예전에 읽었던 '뱀파이어 걸작선' 중 '시튼이모'의 몽환적인 느낌과는 또다른 느낌.
생각보다 책 페이지가 많지 않고 활자도 커서 금방 읽었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무엇엔가 자꾸 끌리는 글솜씨가 있더군요. 동양권 문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서적인 교감이라고나 할까요. 사건의 정황을 통해서 그 뒷이야기가 상상되기보다 인물의 심리변화가 조곤조곤 들려오는 듯한 느낌은 꽤 오랫동안 여운에 남을 듯 합니다. 공포소설을 좋아하신다면 한번정도는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판단입니다. 다만, 밤늦은 시간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귀가하는 생활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바닥이 하얗게 뒤덮였어. 벽장 속에 있던 아마포가 온 방 안을 온통 덮어버렸어.
아무래도 이상해.
온통 하얗게 되었어.
역시 이 집은 이상해. 뭔가 있어. 그래서 싸게 팔았나 봐. 우린 귀신이 나오는 집을 속아서 산 거야.
너…….
이럴 수는 없어. 있는 돈 다 털어서 산 집인데.
너…….
왜 내 얼굴을 그렇게 멍하니 쳐다봐?
그게 뭐야?
뭐가?
얼굴에 헝겊이 덮여 있어.

- <우리는 서로의 그림자를 밟는다> 중에서



저 집이 보통의 집과 아주 다른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한번 찾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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