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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배들의 언어 조작술 "빨갱이는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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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배들의 언어 조작술 "빨갱이는 악마!"
[김영종의 '잡설'·21] 우파의 가면을 쓴 모리배 ②
기사입력 2010-07-09 오전 10:52:27

우파의 가면을 쓴 모리배 ②

지금까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언어 조작술이야말로 이들이 성공한 비결이었다. 구체적으로, 김성수 일파가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항일 독립 운동의 정통을 내세울 수 있었던 것도, 이름과 대상이 일치한다는 오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름은 대상의 본질을 가리킨다고 모두들 굳건히 믿고 있지 않은가. 실제의 사용에 근거해서 이름을 부르는 것만이 근본적인 처방이다. 김성수 일파의 활동을 볼 때, 친일파 또는 기껏해야 민족개량주의라는 이름이 알맞다. 그들이 가슴에 달고 다니는 민족주의라는 이름의 훈장은 한시 바삐 떼어내 수거돼야 한다.

한 사회에서 국권론을 옹호하는 세력을 우파라 하고 민권론을 옹호하는 세력을 좌파라 할 때, 친일파나 민족개량주의자가 우파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은 매국노일 뿐이다. 그러면 이자들이 우파로 행세하는 데 이용한 환영들을 알아보자.

민족이라는 낱말은 근대 식민지 사회에서 신과 같은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 근대란 근대국가 없이는 존립할 수 없기 때문에 식민지 인민들은 자주적인 근대국가 수립을 열망하는 것이며, 따라서 민족주의 진영이든 사회주의 진영이든 민족개량주의 진영이든 민족의 이름을 걸지 않을 수 없다. 일례로, 중국 공산주의나 북한 공산주의도 기실은 민족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구에서는 근대국가의 구성원을 국민, 근대사회의 구성원을 시민이라고 부르는 데 견주어, 식민지에서는 민족과 민중이 이를 대신한다.)

이때 민족은 핏줄과 혈통을 본질—본질은 환영이다—로 하므로 자연히 단군이 부각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국권론에 목숨을 거는 우파와 민권론을 생명으로 하는 좌파가 민족을 이해하고 거기에 부여하는 의미가 서로 다를 것은 자명하다. 여기서는 그 차이를 설명하는 게 목적이 아니므로 개량주의자들이 '민족'을 자기들의 특허 상표로 차지하게 된 사정에 집중하겠다.

대종교와 임시ㅊ� 등 민족주의자들의 항일 투쟁이 얼마나 가열(苛烈)했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개량주의자들이 느낀 열등감과 콤플렉스와 증오가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민족주의자들을 국수주의자, 테러리스트 또는 사회주의자라고 부르면서 세계성과 과학성을 결여했다느니, 사회주의자들과 한패가 되어 계급 투쟁으로 민족을 분열시킨다느니 맹비난을 퍼부으며 자기들만이 진정한 민족주의자라고 자처한다.

친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이들은 민족주의라는 간판밖에는 살 길이 없으므로 거기에 사활을 거는데, 그 간판은 그들의 활동과는 정반대인 까닭에 환영을 통한 조작 말고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언어 조작에 온 힘을 쏟는다. 그들은 빨갱이라는 말을 탄생시키고, 정국을 민족주의 대 빨갱이로 양분하는 구도를 만든다. 반대 세력은 모두 빨갱이로 몰아붙여야만 그들만이 민족주의 세력이 될 수 있다.

그들의 민족주의는 빨갱이를 통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단독으로는 존립할 수가 없다. 그것은 빨갱이처럼 실체가 없는 '환영'이다. 환영이 햇빛 속에 사라지면 빨갱이 없는 그들의 실체가 친일파라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기 때문에 그들은 죽자 살자 장막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빨갱이는 민족사회를 분열시킨 악마이므로 대척점에 선 그들은 당연히 민족일체의 수호자가 된다. 단군과 홍익인간이 민족일체의 이념으로 등장한다. 외관상 전혀 손색이 없을뿐더러, 이름과 대상이 일치한다는 사람들의 믿음 위에서 '환영'은 '실제'의 위력을 발휘한다. 이 모든 게 언어를 조작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들에게는 환영을 생산하고 유통시키기 위해 언론과 교육문화가 절대적으로 중요하였다.

ⓒ김용철

언론의 호도 탓에 실상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대한민국 교육은 완전히 이들의 이념을 전파하는 곳이다. 교육법 제1조는 교육 이념으로 홍익인간을 내세운다. 안호상은 홍익인간 이념을 기본으로 일민주의(一民主義,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네다")를 주창하여 이승만 독재의 철학을 제공했다.

이는 이미 "1928년 최남선이 <동아일보> 지상을 통해 단군의 건국이념으로 홍익인간을 내세우고, 조선의 구원(久遠)한 생명에 이것이 뿌리이며 조선인의 무궁무진한 창조 진화적 생활에 이것이 추진기라고 한" 말의 연장선상에 있다. (<1910~20년대 동아일보 주도층의 정치 경제 사상 연구>, 김경택 지음, 연세대 사학과 박사 학위 논문, 1998, 184쪽)

일제 강점기 이들 민족개량주의자들은 단군을 이용해 친일 행위와 민족 분열 행위를 민족운동으로 전도하고 미화하였다. 단군의 민족주의는 고려 중기 이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항일독립투쟁에 몸 바친 나철·신채호를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의 핵심 사상이기 때문에 당시 식민지 소비자에게는 오랫동안 사용해본 중에 충분히 검증된 최고로 안전한 제품이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약을 똑같은 이름으로 민족개량주의자들이 발암물질을 넣어 제조 판매하였으니, 소비자는 폭력적인 시장에서 다른 것을 사면 맞아 죽으니까, 아니면 그게 그거려니 하고, 아니면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식으로 독이 든 유사 제품을 계속 사 먹은 것이다.

유사 제품을 거의 일생 동안 먹어온 소비자들은 이제 자기들 스스로 지금 복용하는 약이 정상 제품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바야흐로 도둑이 오히려 매를 드는 적반하장이 완성된 것이다. 그리하여 친일파요 민족 분열주의 세력은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우파 노릇을 하는 데서 적어도 언어 시장에서만큼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게 되었다.

민족개량주의자의 사회발전이론도 그들의 민족 이념과 궤를 같이하여 조작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김성수 일파는 당시 제국주의적 세계 질서를 옹호하고 있던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여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민족의 진로가 일본자본주의의 이식에 달려 있다고 믿었다. 가히 지금 한국 사회에서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선구라 할 만하다.

이들은 약육강식과 우승열패를 특징으로 하는 사회진화론을 사회발전 모델로 삼아 민족이 개조되어야 하며(민족개조론) 독립을 위해서는 그만한 실력을 갖출 만큼 진화해야 한다(실력양성론)는 논리를 펼쳤다. 이는 바로 제국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견해로 민족주의와 정면 대립한다. 그런데도 민족주의의 외피를 쓸 수 있었던 까닭은 발전과 선진화를 향한 사회의 열망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언어 조작을 통해 환영이 위세를 떨칠 수 있는 좋은 토양이었던 것이다.

민족개량주의자들은 이런 기름진 토양을 활용해 사회발전론에서도 좌파의 계급투쟁론과 대항하는 구도를 만들어냄으로써 반사적으로 우파의 자리를 확보했다. 좌파의 계급투쟁론을 빨갱이의 민족 분열 책동으로 맹비난함으로써 매판자본이 민족자본으로 둔갑한 것이다. 교과서에서 김성수 일가의 경제 활동을 민족자본으로 규정하는 것이 좋은 예다. (계속)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00709101912&Section=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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