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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감상문

나의 사직동, 사람 사는 세상이었던 나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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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정보]


화창하던 몇주 전 일요일, 고모와 고모부께서 저희 집에 오셨습니다.
마침 형네 식구들까지 오는 바람에 우리집은 오랜만에 잔치를 벌이는 것처럼 떠들썩했습니다. 제 컴은 일찌감치 조카에게 뺐겼구요, TV 역시 만화영화 채널로 고정되어 버렸습니다. 부지런히 움직이시는 어머니와 형수는 온가족의 음식을 하시느라 분주하셨어요. 그래서 점심메뉴는 홍어매운탕과 낙지볶음이 밥과 함께 쏘주 안주로 올라왔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어른들이 먼저 드시고,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식사하는 중간 조금 한가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형수가 책 하나를 펼쳐보이던군요. 아이들하고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보여서 두권을 샀다고 합니다. 한권은 형네가 가지고, 한권은 우리를 주려고 샀다나요.





책 제목은 '나의 사직동'
책을 펼쳐보니 그 안에는 제가 30년 넘게 살던 동네 이야기가 동화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문화관광부장관상을 받은 아이들을 위한 도서였지만, 내용 만큼은 어른을 위한 논픽션 동화 같습니다.

제가 '동화처럼 펼쳐져 있다'라고 인상적으로 말을 하는 이유는...
그 책 안에서 만날 수 있었던 젊은 시절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 지금은 얼굴 뵌지가 오래된 큰 이모, 작은 이모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내가 늘 거닐던 골목들, 어머니와 가까이 지내시며 우리집 안방을 아무때나 드나드시던 동네 아주머니들까지 책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작가의 이야기에 주된 소재로 쓰여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우리 집안의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은 사실 제게는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비록 지금은 재개발이 되어 회색빛 고급 아파트만이 삭막하게 들어섰지만 말입니다. 골목 발자국 소리를 안방에서 들을 수 있었던 동네, 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던 동네, 옆집 저녁 반찬이 무엇인지 알수 있었던 동네가 이제는 없어졌다는 아쉬움은 우리 가족만의 아쉬움은 아니었나 봅니다. 사직동은 한성옥 작가에게도 제2의 고향이었던 것이죠. 아직까지 어머니는 예전 동네 친구분들을 종종 만나시지만, 요즘은 전화 통화로 아쉬움을 달래실 때가 더 많으십니다. 개발이 안겨준 정든 사람들과의 이별이었습니다.
 



수개월 전에 볼 일이 생겨서 새로 바뀐 그 동네를 자세히 볼 일이 생겼었죠.
정말 삭막해졌더군요. 과거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분위기에 괜스레 마음이 슬펐습니다. 과거보다 사람은 더 많이 살아갈텐데 모두 이사라도 간듯이 조용하고, 대낮이었는데도 뛰어 노는 아이들 한명 없더군요. 나이든 할아버지가 산책을 하실뿐.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노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
여기는 사직동이지만, 나의 사직동은 아닙니다. 나의 사직동은 이제 없습니다.'




문득 예전에 좋아하던 우리 동네 단발머리의 귀여웠던 소녀가 떠오르네요.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변변히 대화한번 못했던 여자애였습니다. 이제는 그 여자애도 볼수 없고, 오며가며 만나게 해주었던 그 골목도 없어졌습니다. 작가처럼 나의 고향 사직동 역시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는 아파트가 요즘 주거 형태의 대세라고는 하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나의 사직동' 같은 동네에서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은데.....요즘 같은 시대에는 철없는 소리고 사치스러운 희망일까요.

사람사는 동네가 정말 그립습니다.


나의 사직동 - 10점
한성옥 그림, 김서정 글/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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