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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감상문

기록, 진짜 대통령 노무현이 보여준 인간 노무현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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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진짜 대통령 노무현이 보여준 인간 노무현의 진심

이제서야 읽은 노무현 관련 첫번째 책이다. 그동안 출간된 수많은 그에 대한 책을 나는 피하고 거부했었다. 그를 싫어해서가 아니라......미안했다. 그에게 미안했고, 그의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그의 책을 읽는 것은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던 내 자신을 확인하는 기분이 들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읽지 않았다. 이제는 괜찮을까 싶어서 용기를 내어 선택한 책이 '기록' 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나의 미안함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기록 - 10점
윤태영 지음, 노무현재단 기획/책담



한 사람의 진심이 처참하게 짓밟히고 왜곡되는 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안에 '정치'만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진심이 없다. 한국 주류라는 자칭 애국보수 정치인들이 그 상처안에서 또아리를 트고 있다. 상처는 점점 커지고 깊어진다. 흘러나온 피는 뱀의 갈증을 해결한다. 한 사람의 진심은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고 시작과 끝을 지켜본 윤태영비서관의 고통은 나의 미안함보다 100배 아니 1000배는 더 힘겨웠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갑작스러운 서거 뒤 윤 비서관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그림자'라고 불리기도 했던 윤 비서관은 아주 오랫동안 마음의 병을 앓았습니다. 한동안 사람과의 만남조차 끊고 침잠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습니다. 가끔 만났을 때 눈에 띄게 쇠약해진 모습을 보고 가슴이 저리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는 사람들 앞에서 거의 말이 없었습니다. - 문재인 (page 13)-



<기록>은 윤태영의 노무현에 대한 관찰의 결과물이다. 그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지낸 사람의 책이라서 선택한 것이었다. 그가 노무현의 마음을 가장 잘 읽어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노무현에 대한 수많은 책이 나왔지만 어떤 책 하나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특정인에 대한 책은 대체로 칭찬과 비판 중에서 한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언론이나 인터뷰에 등장했던 그의 말, 정치적 평가 또는 대화를 나눠본 사람들의 추억으로 엮인 책일 것이다. 나는 조금 다른 형식의 책을 읽고 싶었다. <기록>은 그런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덥썩 잡았다.


무엇보다 관찰자가 있다는 것, 그것도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장차 글로 표현할 관찰자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은 스스로를 절제하고 도여매는 강력한 동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중략)

그렇게 시작된 기록은 퇴임 후로도 이어졌고, 서거하시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남았다. 수백 권에 달하는 휴대용 포켓 수첩, 1백 권에 달하는 업무 수첩, 1,400여 개의 한글파일이 생산되었다. - pgae 17, 18 -


이 책을 통해 크게 느껴지는 세가지가 있다. 첫번째,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했다는 것.  두번째, 노무현은 사람과 기록에 대한 애정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각종 부당한 공격에 많은 고민을 했었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이 책에 대한 느낌은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저런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그렇다고 세가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나 특별히 감명을 준 대목이 있지는 않았다. 그냥 책 전체에서 전해오는 '대통령이 된 인간 노무현의 마음'이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돈을 벌려는 생각이 있으면 여기는 오지말아야 합니다. 출세를 바란다면 청와대가 답은 아닙니다. 명성을 얻으려면 TV나 잘나가는 직업을 선택하십시오. 작은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버리고 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가 올 수도 있습니다. 작은 집착을 버리고 꿈을 향해서 가야 합니다. 절제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일거수일투족 주시를 받고 있습니다. - 노무현 (page 122) -





<기록>은 노무현을 미화한 기록서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책에 대해 나도 조금은 실망했을 것이다. 노무현을 좋아하는 한명의 독자로서 이 책을 읽었을 때, 문재인의원 말처럼 아주 담백하고 정직하게 쓰였음을 느꼈다. 이것은 나의 솔직한 평가다. 그만큼 저자가 관찰자로서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선으로 쓰려고 애쓴 흔적이 많이 보이는 책이다. 특정 사건에 대한 노무현의 태도와 주변인들의 반응, 그의 정치철학과 스타일, 그의 원칙과 진솔하고 인간적인 모습 등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저자와 노무현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인간적인 연민이나 호감이 완전히 배제되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정도 균형을 유지했다는 것도 거대한 슬픔을 간직한 저자의 사연을 고려했을 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반대 정파에 대한 합리적 비판도, 수 많은 부당한 공격에 대해서도, 노무현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서술까지도 지나칠 만큼 절제되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딱 한 대목에서 가슴이 아팠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서 물러난 대통령에게는 아직 창창한 시간들이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그 시간들만큼이나 그에게는 여전히 도모할 수 있는 많은 일들과 다시 뭔가를 이룰 무한한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형님의 구속을 계기로 상황은 바뀌고 있었다. - page 245 -


우리는 한 사람의 '가능성과 시간'을 잔인하게 빼았었다. 가짜보수의 사악함을 견제하지 못한 멍청한 국민이기에 우리도 공범인 셈이다. 덕분에 그가 만들고 뿌리려 했던 더 많은 '희망씨앗'도 사라졌다. 그 여진이 2014년 지금까지 남아서 세월호 참사를 불러온 것은 아니었을까.


<기록>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활자와 내용이었지만, 중반을 넘어서부터는 쉽게 읽혀지지 않았다. 심리적 부담감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죄책감이었을 것이다. 결말을 알고 읽는 책이었는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의 죽음을 재확인하는 일은 아직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훗날 역사학자는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뭐라고 기록할까. 정직한 학자라면 '정치적 타살'이었다고 기록할 것이다. 비겁한 학자라면 '정쟁의 비극'이라는 애미한 태도를 취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진보하고 있는지, 그때가 되어도 같은 질문을 하게 될까 두렵다.


그의 순결한 결기는 양날의 검처럼 스스로를 베었지만, 국민에 대한, 국가에 대한 그의 철학은 아직도 살아있다. 그것이 이 시대의 유일한 '희망'일 것이다. 좋은 소식은,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진짜 대통령'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그 '희망'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리라는 점이다. 나쁜 소식은 지금 우리에겐 '진짜 대통령'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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