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만 잘 써도 ‘한 방에’ 돈 버는 세상이 올까. 최근 상금액이 ‘1억’을 넘기는 문학 공모전이 잇따라 생기면서 작가 지망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이제까지 문인들의 최고의 등단 코스로 알려진 신춘문예는 단편소설에 중점을 둔 만큼 주로 5백만 원에서 7백만 원 정도의 상금을 내걸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상금은 신인 문인들에게 있어 실제로 ‘작은 보탬’이 되기보다는 등단의 기쁨을 나누는 ‘술값’으로 단 번에 소진되는 것이 통례.
그래서 최근 ‘억’ 소리나는 장편소설 문학상의 상금 액수는 평생 가난을 등에 지고 살아오고 살아가야 할 문인들에게는 또 다른 창작 욕구를 불어넣어주는 계기라고 할 만하다.
1억짜리 문학상의 효시, 세계문학상
보통 2천만 원에서 3천만 원 정도의 상금을 내걸던 장편문학상은 독자 저변이 넓지 못했던 장편 작품의 질을 높이는 데도 일조해왔다. 지난해 5천만 원으로 인상된 한겨레문학상이 대표적인 사례.
하지만 무엇보다 이 같은 장편소설에 대한 관심을 일거에 획득한 것은 역시 세계일보가 주관하는 세계문학상이다. 2004년 당시 문학상으로서는 처음으로 ‘1억원 고료’를 내세우며 시작된 세계문학상은 김별아의 ‘미실’을 1회 수상작으로 선정해 문단과 독자들의 이목을 모았다. ‘미실’은 ‘최초의 1억원 고료’라는 상징이 주는 효과에도 불구하고 그리 큰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이 문학상이 다시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2회 수상작인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의 히트 덕분. 손예진 주연의 동명영화로 더 잘 알려진 이 작품은 수상 이후 한동안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며 꾸준한 판매를 유지했다. 인터넷에는 이에 대한 추천이 있따라 올라왔다.
최근에는 영화로도 옮겨질 것으로 알려져 가히 원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 Use)의 모범적인 사례로 불릴 만하다. 또 서점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4회 수상작 백영옥의 ‘스타일’도 드라마화가 결정돼 그 인기를 다시 한 번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멀티 유스’의 위력은 그 자체보다 ‘원 소스’ 쪽에 있다.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원작 또한 다시 주목을 받으며 동반 인기상승 효과를 누리게 된다. 작가는 이에 대한 인세 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판권 계약료까지 얻게 되므로 실질적으로는 1억원 고료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다.
이처럼 ‘1억원 고료’로부터 파생된 대중의 주의 환기가 원소스 멀티 유스의 성공을 이끌며, 이후 등장할 고액 문학상 공모전의 제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 지붕 두 가족, 조선일보 뉴웨이브-판타지 문학상
조선일보는 여기서 더 나아가 본격문학에만 제한을 두지 않고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뒤섞은 팩션(faction)이나 현대 여성의 꿈을 그린 칙릿(Chick-lit) 등 최근 인기를 끄는 대중문학까지 아우르는 중간소설(middlebrow fiction)을 공모했다. ‘뉴웨이브’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상은 장르에서도 정통 추리물, 판타지, SF, 스릴러, 로맨스 등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들도 도전 가능한 문학상이다.
세계문학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회 수상작인 유광수의 ‘진시황 프로젝트’ 역시 ‘1억 원 고료’라는 후광이 11쇄가 넘는 판매를 가능케 했다. 비록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레옹’의 뤽 베송 감독과 오디세이 픽처스가 손을 잡고 영화화하기로 해 고무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뉴웨이브 문학’이라는 영역이나 ‘중간소설’, ‘경계문학’ 등의 키워드는 지원자들로 하여금 다소 모호한 인상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인지 이 상은 이듬해 제2회 공모에서 급격히 응모작 수가 줄었고 결국 당선작도 내지 못했다.
이에 조선일보는 아예 ‘한국의 해리포터를 찾는다’는 목표 아래, 장르를 판타지 소설에 한정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이달 초 신설했다. 고료는 역시 1억 원. 이 상은 이제까지 문학의 주변부에 머물렀던 판타지 장르와 작가를 본격 육성하기 위한 취지에서 비롯됐다. 이 상이 흥미로운 것은 ‘해리포터’를 언급한 것처럼 당선작을 판타지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먼저 출간하겠다고 밝힌 것.
그래서 응모작에게는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보편성’이 요구된다. 세계시장에서 장르문학으로서의 가능성이 입증됐을 때 영화나 게임 등 다른 매체로 전환되는 환경이 조성돼 있는 만큼, 이 같은 시도는 한국형 판타지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OSMU 목표로 한 문학상 신설 붐
이들 좋은 콘텐츠로서의 소설을 눈여겨보고 있는 것은 문인들 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원작소설을 변환해 2차 콘텐츠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방송 관계자나 영화 관계자들도 원천 콘텐츠로서의 문학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예 처음부터 원소스 멀티 유스를 노리고 올해 새로 제정된 ‘멀티 문학상’은 이런 관심이 구체화된 결과다. 상금 1억원인 이 상은 그 공모 대상부터가 ‘출판(위즈덤하우스)-방송(SBS)-영화(쇼박스) 화’를 전제로 하는 ‘원천 콘텐츠’로서의 장편소설이다. 따라서 당선을 위해서는 기존처럼 문학성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영상적 상상력 또한 겸비되어야 한다.
이후 원소스 멀티 유스 콘텐츠 발굴을 위한 출판사와 영화사의 공동 주관 공모전은 잇따를 전망이다. 지난달 18일 살림출판사와 영화제작 및 투자배급사 프라임엔터테인먼트는 총 3억 원 규모의 상금을 걸고 ‘대한민국 문학&영화 콘텐츠 대전’을 공모했다.
공모 부문은 출판 콘텐츠, 영화 콘텐츠, 만화 콘텐츠로 나뉘며 소설부터, 청소년소설, 동화, 과학저술, 사회.문화비평, 만화, 시나리오, 파일럿 영상까지 다양하게 접수받는다. 이중 소설 부문이 1억 원, 청소년소설 부문이 5천만 원, 시나리오 부문이 5천만 원 등으로 고액 상금의 매력도 여전하다.
공모전의 총괄심사위원장을 맡은 김탁환 씨(KAIST 교수)는 “출판 따로 영화 따로, 인문학 따로 과학 따로, 좌파 따로 우파 따로의 끼리끼리 문화를 부수고, 전혀 다른 너와 내가 모여 더 크고 알찬 콘텐츠를 키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강유정 평론가는 이 같은 문학상들의 등장에 대해 반색과 함께 우려를 동시에 나타낸다. 원소스 멀티 유스를 목표로 한다는 사실 자체로 좋은 작품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한 장편문학상의 심사위원이기도 한 강 평론가는 “최근 비슷한 성격의 장편문학상이 잇따라 생기면서 한 문학상 심사에서 떨어진 작품이 다른 문학상에 다시 응모되는 경우가 발견되곤 한다”며 아직은 좋은 작품을 만나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한다.
그는 “새로 제정된 문학상들이 정체성을 확립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서로 차별성을 확립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장편소설 발전 위한 문학상 등장
최근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는 국내소설들은 대부분 장편소설들이다. 최근 50만 부를 돌파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비롯해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소설들은 지난해부터 심화된 경제 불황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판매고를 올리고 있어 출판 관계자들을 흐뭇하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편소설 장르 전체가 고르게 읽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지난해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목록 집계를 보면 상기(上記)한 작가들 외에 김훈, 김려령, 백영옥, 박현욱 등 일부 작가들에 여전히 편중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문단에서는 이제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이나 문예지의 지면 할당 등 단편소설 위주로 돌아가는 현 문학계의 토양을 장편소설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학사상사의 장편 공모전은 이러한 문단의 시스템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행사다. 1억 5천만 원의 상금을 내건 이 공모전은 현재까지 문학상 중 최고액을 자랑하고 있다. 이 행사는 당선작에게 1억 3천만 원을 지불한 뒤 추가 창작작품의 출간 시 1천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하며 장편소설의 지속적 창작에 대한 토양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중앙일보도 뒤질세라 1억 원짜리 문학상 제정에 동참했다. 단편소설에서도 1천만 원이라는 최고액을 자랑하는 중앙신인문학상을 운영 중인 중앙일보는 이번 상을 신설하며 어떤 기준도 두지 않는 또 하나의 파격을 제시했다. 중앙장편문학상으로 명명된 이 상이 요구하는 모습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나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같은 노벨문학상급 작품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베스트셀러 ‘노르웨이의 숲’까지 아우르는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를 가진 이야기다.
‘해리포터’나 ‘다 빈치 코드’, 심지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같은 칙릿도 환영한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오로지 작품의 질로만 평가를 하겠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통합 장편문학상’이라고 할 만하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고액 상금을 내건 문학상이 문학의 수준을 높이거나 독자층을 확장하는 데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런 우려는 ‘1억’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문구가 ‘문학작품’보다는 ‘매문(賣文)’의 뉘앙스를 더 강하게 주는 데서 기인한다. 또 한 문학상 관계자는 ‘장편’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한 번 쓰기도 어렵다는 점과 높은 고료에 걸맞은 수준의 작품이 쉽지 않아서 결국 당선작을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1억 원 고료’로 대변되는 고액 상금 문학상들은 ‘장편소설의 발전’이라는 문학계의 희망에 ‘원천 콘텐츠 획득’이라는 방송-영화계의 욕망이 곁들여진 새로운 시대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의 반응이 없으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상품처럼, 결국 남는 것은 진정한 작품을 배출하는 문학상이고 그렇지 못한 문학상은 도태될 것으로 예상된다.
출처:주간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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