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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사랑/남자와 여자

위험한 상견례, 현실은 전혀 코믹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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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개봉 예정인 한국 영화다. 그런데 왜 사회면에 포스트 발행을 했을까.
그것은 이 영화가 '지역감정'과 관련있는 내용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김진영 감독은 '아기와 나', '청담보살'을 제작했었다. 대박영화는 아니었기에 유명한 감독이라 할수는 없다. 그러나 전국을 휩쓸었던 시트콤 <순풍산부인과>를 연출했다면 그에 대한 시선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이제 영화 <위험한 상견례>의 예고편을 구경해보자.





내가 이 영화에 관심 생긴 것은 배우 김수미의 인터뷰 기사 때문이었다.
김수미는 고향때문에 첫사랑과 헤어졌다는 고백을 한다.

전라도 출신 연예인이고 조실부모한 채 대학도 못 갔다는 이유로 상대방 어머니께 거부당한 적 있다. 
그때 전라도 출신인 것이 죄냐고 되묻기도 했다. 전라도 출신으로서 큰일은 아니지만 자잘한 일로
무시당한 기억이 있어서 영화 촬영 내내 공감했다.
<출처>

이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다. 전라도가 고향인 현준(송새벽)이 다홍(이시영)과 결혼하기 위해서 고향이 전라도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그녀의 아버지를 설득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풀어간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많은 분들은 이것이 영확 속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흔하게 겪는 일이라는데 동의할 것이다. 나의 친구 그랬고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내 친구는 아직 결혼을 못했다. 나처럼 노총각이다.
이 친구는 결혼을 못할 만큼 크게 부족한 점은 없다. 결혼을 못했으니 뭔가가 부족하긴 부족한 모양이지만(나처럼) 성격적으로 외모적으로 경제적으로는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에 속한다. 여자들이 걱정하는 이상한 남자는 아니다. 그런 그가 꽤 오래전 몇년 동안 사귄 여자가 있었다. 소개는 못받았지만 친구말로는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가 전라도 아가씨라 안된다고 했단다. 고민을 하다가 결국 헤어졌다. 4대 독자였던 그 친구는 부모님을 거절할 용기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후로 다른 여자를 만나기도 했으나 결실을 맺지는 못했고, 최근까지 솔로로 지내고 있다. 몇일 전 통화에서 말하길 결혼은 하고 싶지만, 안되면 혼자라도 살거라며 피식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친구네 가족은 경상도가 고향이다. 그리고 내가 느끼기에 그 친구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이번에 알았는데 '故 장자연'씨의 고향이 전라북도 정읍이었다. 우리 가족도 그렇다.
나는 태어나서 2살때인가 부모님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고 들었던 것 같다. 서울 사람으로 성장해서 고등학교까지 진학을 했고, 고2 시절에는 친한 친구가 한명 생겼었다. 내가 볼때 그 친구는 말을 참 잘하고, 착한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날 정말 뜬금없이 전라도 사람들을 욕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나의 고향을 알고 있었는데 조금 미안했던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황당한 비난을 계속 퍼붓고 있었다. 경상도 사람들에게는 차에 기름도 안넣어준다거나, 김대중은 간첩이고 광주학살의 주범이라거나, 식당가도 밥을 안판다거나 하는...식의 주장들. 나는 멍하니 듣고 있으면서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냥 저 친구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의아해하면서도 알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집에 와서 그 이야기를 아버지께 했다. 나는 그제서야 우리나라에 '지역감정'이라는 놈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어른이 되어서 깨달았다. 그 친구는 분명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나도 그렇고 그 친구도 그렇고 정치에 관심있을 나이도 아니었고, 그런 이야기를 단 한번도 한적이 없었다. 우린 그냥 시험 걱정하고 선생님 숙제를 걱정하는 철없는 남학생에 불과했으니까(나는 시험에도 별 관심이 없었지만). 그리고 군대를 제대한 후 내가 읽었던 최초의 정치 도서들은 강준만의 <전라도 죽이기>와 <김대중 죽이기>였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TV나 영화에서 전라도 사람들은 늘 가난하고, 무식하고, 깡패같은 거친 역할만 해왔다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안다. 그런 영향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경상도 사투리는 투박하지만 남자답고 멋지다라는 이미지가 있으며, 전라도 사투리는 가볍고 촌스러우며 간사하다는 느낌까지 주고 있다. 그런 탓일까? 경상도 사투리는 유행어가 되기도 하지만, 전라도 사투리는 유행어가 된 경우가 없다.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은 김수미씨 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를 덤으로 안으며 고달픈 현실을 살아왔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김대중 대통령의 IT정책으로 과거보다 많이 희석된 것은 사실이지만(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선견지명이셨다) 아직도 진행 중이다. 내 친구처럼 고향때문에 이별한 경우는 숫하게 많을 것이고, 특정 지역의 비방을 조기교육으로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고,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직장 내 승진에서 매번 좌절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그들 몇몇이 아니라 전 국민이 받을 것이다.

전라도를 저주하는 사람들이여, 이제 속이 시원하신가.


다시 영화이야기로 돌아와보자.
과연 <위험한 상견례>가 경상도 사투리 만큼이나 전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들려줄 것인지 나는 관심이 많다. 형평성 차원이 아니다. 고향의 사투리는 지역과 상관없이 구수하게 들려야 한다. 그러나 김수미나 나같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가 될 것이고, 그것은 이 시대가 남겨준 상처자욱때문에 피할 수 없다. 김진영 감독도 이런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영화의 결말은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해피엔딩. 그것이 아니면 이 영화는 의미가 없지 않을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난 상대방의 태어난 고향에 특별한 관심은 물론 선입견이 없다. 태어나서 그런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선입견을 가진 사람과는 절대로 가까이 하지 않는다. 직장에서 그랬다면 나는 퇴사했을 것이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고향때문에 반대하실 부모님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사랑하는 그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걱정되는 것이 한가지 있다. 
'여자쪽 부모님을 설득해야 될 일이 내게도 생기면 어쩌냐 하는 것'이 아니다.
'과연 그녀가 가족의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 끝까지 함께 인내하며 노력할까'하는 점이다.
남자하기 달렸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무관심한 답변이니 사양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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