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대로 라면국물 먹기? 이건 노숙이야
오마이뉴스 | 입력 2010.08.11 15:19
[오마이뉴스 이유하 기자]
연일 찜통더위다. 서울에 올라온 지 어느덧 2년. 나는 보일러 실내 온도가 35도까지 육박하는 '찜질 옥탑'에 산다. 게다가 나는 생의 반을 집구석에서 보내지 않았던가. 샤워하고 돌아서 나오면 땀이 주르르, 마인드 컨트롤로 '여기는 북극이다, 여기는 얼음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해 봤자 한계가 있는 법!
전국 방방곡곡 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떠나는 '이삿갓'이고 싶었지만, 결국은 친구가 있는 제주도로 날아갔다. 제주도! 이름만 들어도 시원해지는 그 곳 말이다. 성수기를 맞아 천정부지로 가격이 오르는 저가항공 비행기를 '광클'해 겨우 왕복 14만 원짜리 항공을 끊어서 제주도로 고고!(예전에는 왕복 3만8000원짜리 항공 끊었다고 자랑한 적도 있었는데...쩝)
이왕 제주도에 왔으니,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던 나! 친구가 얼마 전에 텐트를 샀다는 말이 번뜩 떠올랐다. '그래, 캠핑을 하는 거야.' 땅에 떨어진 사탕을 주워 먹던 코흘리개 꼬꼬마 시절 이후에 캠핑이란 것을 가본 적이 없었기에 더 설?다. '텐트가 있는 데 까짓 거 밖에서 자는 게 뭐가 대수야'하고 호기롭게 제주도 내 캠핑장을 검색했다. 물망에 오른 것은 서귀포시 돈내코 야영장이었다.
그리곤? 끝이다. 1박 2일 캠핑인데 준비할 게 뭐 있어? 하고 '탱자 탱자' 놀고 있었는데 시간이 다가오니 밥을 먹으려면 버너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잠을 자려면 이불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기억해 냈다.
'이렇게 어두운데 텐트는 어떻게 친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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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뒤늦게 허둥지둥하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빈둥거리다 보니, 야영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날이 어둑어둑 저버린 저녁이었다. '헉, 이렇게 어두컴컴한데 텐트는 어떻게 친다냐?'
처음 가본 야영장이라 일단 찾는 데 어려웠고 (그 깨알만한 표지판!) 이미 명당은 다른 사람들이 차지한 터라 우리는 더 위로 걸음을 옮겨야 했다. 밤에 산 쪽으로 올라가니 괜히 무서운 마음도 들었다. 어디가 어딘지 몰라 헤매던 중, 이상하리만치 텐트가 하나도 없는 공터를 발견했고, 우리는 어둠속에서 첫 텐트 치기에 도전했다.
같이 동봉된 설명서에는 단 한 줄의 설명이 쓰여 있을 뿐이었다. '텐트 천 위에 막대를 엑스자 모양으로 치시오'(대략 요정도의 성의 없는 설명). 당황했지만, 정말로 긴 막대를 엑스자로 두르니 텐트가 완성되었다. 이놈의 편리한 세상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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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좀 헤매고, 날씨는 덥고, 모기가 다리를 쥐어뜯고 있었지만,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치킨을 뜯고 있으니, 여기는 어드매뇨, 지상 낙원인가 싶게, 마음이 청량해졌다. 하늘은 영화 < 배트맨 > 의 고담시를 연상시키는 진회색의 구름들이 멋들어지게 펼쳐져 있었고, 더운 공기 사이로 살짝 불어대는 신선한 산바람, 그리고 이따금씩 울어대는 정체모를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살짝 납량특집 분위기까지 곁들인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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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아침. 아, 또다시 야영에서 우리가 빼먹은 것을 하룻밤 자고 나니까 알아챘다. 텐트 바닥에 깔 매트가 절실했다! 딱딱한 바닥에 자려니 어깨가 뻣뻣하니 목이 돌아갈 지경. 게다가 밝을 때 보니까 우리 텐트 바로 옆에 무시무시한 대형 거미줄이 쳐져 있는 게 아닌가. 여기 아무도 텐트를 안 쳤던 데엔 이유가 있었던 거다. 그리고 모든 걸 다 능가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늘이 없어 '뙤약볕'이었던 거다.
거기서 주눅들 내가 아니지. 일단 눈곱도 안 떼고 '모닝라면' 끓이기에 착수했다. '돈내코가 식후경'이라 그 낙후한 환경, 뙤약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빌려온 버너, 집에서 쓰던 냄비 등을 꺼내서 라면을 끓였다.
침이 입술 밖으로 흘러내릴 것만 같은 라면이 끓여지기까지의 시간. 그 인고의 시간을 감수하고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생각났다. 젓가락이 없다! 보글보글 먹음직스럽게 끓어 넘치는 라면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다 라면이 불 것 같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부끄러움도 없이 옆집으로 돌진했다.
"저기요. 혹시 젓가락 남는 것 있으면..."
"여기 있어요. 다른 건 더 필요한 거 없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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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내코 계곡, 얼음장 같은 물이 바닥에서 샘솟는 곳
배도 채웠겠다 이제 진짜 돈내코 계곡에 발을 담그러 튜브에 바람을 채우고 속에 수영복까지 입고 기세등등하게 계곡으로 향했다.
아, 아름다워라. 마음이 사르르 녹는 아름다운 계곡의 정경에 입을 떡 하고 벌리고 물로 뛰어드는 순간! 또 한 번 놀랬다. 영하 5도는 될 것만 같은, 시원함을 넘어서 차가운 계곡물에 발이 얼어버릴 것 같았다. 물이 너무 차가운지 물 위에선 하얀 김이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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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내코는 바닥에서 물이 샘솟는 곳이라 이렇게 차가운 거여."
그렇군. 그래도 물놀이를 하기엔 너무너무 추웠다. 그저 시원한 물을 바라보며 입맛만 다셨지만,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고 무더위가 싹~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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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 다시는 캠핑 안 갈 거냐고? '오 노~' 그럴 리가 이번 캠핑을 발판으로 다음에는 꼭 바닷가에서 캠핑을 해야지. 그리고 캠핑의 꽃 삼겹살도 꼭 구워 먹을 테다. '캠핑 성공기? 커밍 순~'
제주도는 '캠핑 천국' | ||||||
일단 돈을 하나도 받지 않는다. 비록 사용하진 않았지만 샤워장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나름 깨끗하고 깔끔한 야영장이다. 그렇게 크진 않지만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여유있게 캠핑을 즐길 수 있다. 돈내코라는 지명은 '멧돼지(돈)들이 물(내)을 먹던 내의 입구(코)'에서 온 말이다. 주소 : 제주도 서귀포시 상효동1495 (공항이나 제주시에서 갈 때는, 5.16 도로 타고 쭉 가다보면 서귀포 시내 도착하기 직전에 있다) 규모 : 40동 부대시설 :취사장, 샤워장, 화장실 이용 기간 : 4월~10월 연락처 : 064-733-1584 제주도에는 돈내코 야영장 외에도 서귀포 자연휴양림 야영장, 모구리 야영장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깔끔한 야영장이 많다. 야영비도 5천 원 이하로 거의 공짜다. 여름에는 함덕, 협재 해수욕장 등에 해변 야영장도 잘 갖춰져있다. 텐트는 제주도의 렌탈 업체에서 하루 1만5000원 정도면 빌릴 수 있다. 비싼 숙박 고민 마시고 즐거운 추억거리 만들 수 있는 캠핑에 한번 도전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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