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코미커즈(Comickers) 2004년 봄호에 실린 ASIAN NEW WAVE 특집코너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유명 만화가인 오오구레 이토씨와, NCsoft 의 「리니지 2」 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잘 알려진 Studio SIS 정준호씨의 대담 내용으로, 최근 국내 그림장이들의 일본 진출과 관련되어 관심있는 분들이 있으실 듯 하여 번역해보았습니다.
오오구레이토. 만화가. 1972년생, 일본 미야자키현 출신. 대표작 '천상천하' (집영사, 울트라점프 연재중), '에어 기어' (강담사, 주간소년매거진 연재중) 등등.
정준호. 일러스트레이터. 1976년생, 한국 서울 출신. 한성대 시각디자인학과 졸업. 현재 NCSoft '리니지 2' 캐릭터디자인 및 일러스트레이터로써 활동중.
한국일러스트업계사정
준호 : 저는 한국의 'EZ2DJ','EZ2Dancer' 라는 음악게임 스타일의 아케이드 게임에서의 애니메이션 그래픽을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작품은 한국의 아케이드 게임 센터에서는 볼 수 있지만, 일본에서 찾아보실 기회는 없지 않았을까 하는데.
오구레 : 최근은 한국의 작가분들에 의한 작품을 보는 기회도 늘었습니다만, 아케이드 게임이라면 역시 쉽게 찾기 힘들지요. 그런데 준호씨는 회사에 소속되어있으시죠? 전부 회사에서의 업무만 하고 계시는 것인가요?
준호 : 예전에는 회사에 소속되어있으면서도, 외주를 받으면서 조금씩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리니지 2」 가 팔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회사에서의 속박이 강해져서 최근에는 전혀 못하고 있네요.
- 한국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루트가 있습니까?
준호 : 역시 최근에는 자기 자신의 홈페이지를 등으로 어필하는 것이 가장 두드러지지 않나 싶습니다.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전문 학교 같은 곳도 생겨서, 그곳에서 추천받아 프로가 되는 케이스도 있구요. 미대에도 애니메이션 학과가 생기기도 했고, 게임 전문 학원이라던가 대학이라던가도 생기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그 정도로 버블 상태라는 것이겠죠. 하지만 역시 역사가 짧기 때문에 그런 루트를 제대로 확립하고있는 곳은 아직 거의 없지 않을까 합니다.
오구레 : 저는 언제나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림에 관한 일에 대한 역사가 젊다고 말은 하지만, 그림 자체는 굉장히 숙달되어 있다는 느낌- 이라는 것인데요. 어떻게 이렇게 잘그리는 사람들이 갑자기 세상에 나타날 수 있었을까. 그런 신기한 느낌이 있네요.
준호 : 일본보다 시스템이 약하고 업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니까, 힘이 있는 사람이라도 알려져있지 않은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도 그런 기회를 만드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지요. 그래서 대개 기회가 올 때 까지 혼자서 전력투구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커뮤니티 같은 것이 존재하고 있습니다만 그들 자신도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게 되면, '아니 이것은? 누구 그림이지?' 같은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일러스트레이터라는 포지션이 생긴 것도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일러스트를 그린다고 하면 옛날의 한국에서는 만화가라던지 애니메이터라던지 둘중 하나인 케이스가 많았었습니다. 저는 어느쪽도 아닙니다만.
- 게임 일러스트레이터, 라는 것입니까?
준호 : 그렇습니다만, 본업으로서의 일러스트레이터 라는 것은 확립된 직업이 아니었었죠. 가장 최근에 생겨났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90년대 말 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해서,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서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전 코미커즈에 실렸던 (2001년 여름호) 한국의 일러스트레이터 기사로 소개된 사람들은, 정말 한국에서의 제 1 세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준호씨도 처음에는 만화가를 지향하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준호 : 처음에는 저도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88년도에 일본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 때에 「드래곤 볼」 이라던가 「시티헌터」 라던지 「북두의 권」 같은 것을 읽었죠 (웃음) . 당시의 보았던 만화들로부터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캐릭터라던지, 새로운 세계관이라던지, 어린 아이였던 시절이었지만 '이건 정말 대단해' 라고 생각했습니다만, 2년 정도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니까 한국에는 그런 것이 전혀 존재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과연 한국에서 만화를 그려나갈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한국에는 징병제도가 있습니다만, 군대를 마치고 돌아온 97년, 98년 정도의 시기에는 만화가를 하겠다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었죠. 하지만 역시 만화가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어서...
실제로 혹시 만화가가 된다고 생각하면, 정말 겁납니다. 실은 만화가로서 원고를 그렸던 것은 신인상이라던가에 당선된 때에 제출했던 원고 밖에는 없습니다만... 만화가는 잘 팔린다면 성공할 수 있고, 아이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기본적으로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는, 만화가를 포함하여 서적 자체를 굉장히 많이 읽는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한국은 그렇지만은 않기 때문에, 만화를 그린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러웠습니다. 특히 최근은 국내에서 만화로 성공한 전례가 없구요. 이런저런 리스크가 크다고 느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만화계
오구레 : 솔직히 얘기하면, 저는 일본의 만화계로부터 위험감을 느끼고 있는 부분이 있어서... 특히 메이져의 방향에서 그것을 강하게 느낍니다만, 예를 들자면 본래에는 없던 이해할 수 없는 인체의 크기라던지 (역주 : 균형, 또는 눈이나 머리의 크기 등의 '모에形' 디폼을 의미하는 듯), 그런 것으로 대표되는 듯한, 일본의 만화가 가지고 있던 바보스러움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런 것을 지금의 만화는 점점 쫓아가고 있는 인상이 있습니다. 또한 그것을 솔선해서 이끌고 있는 것은 젊은 만화가 쪽에 많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젊으면 젊을 수록 자유스러운 시도가 보이지 않고 뭔가의 룰에 얽매여서 이도저도 아닌 듯한 느낌이 드는 것 같은... 젊기 때문에 그런 벽을 부수어가야 하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하지만 그런 시도가 되는 사람이 굉장히 한정되어있다고 해야할까요. 아주 적습니다. 전에, 「신·암행어사」 (소학관/선데이GX 출판) 를 그리고 계시는 양경일씨의 만화를 읽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죠. 일본의 만화의 문법을 그대로 사용하고는 있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일본인이 가지지 않은 감각이라는 것을 느꼈거든요.
준호 : 그런 감각이라는 것이 역시 느껴지는 것인가요?
오구레 : 느껴지지요. 특히 양경일씨는 일본의 만화에 대한 것을 상당히 공부하고 있으면서도, 독자적인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의 성공에 의해서 한국의 만화가들이 몇분인가 일본에 진출하시기도 했지요. 그런 분들을 보고 있으면, 굉장히 새로운 바람이 느껴집니다. 이런 말을 하게 되면 일본의 만화가 지망생 분들에게 실례되는 말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렇게 새로운, 자유로운 발상이 가능할 수 있다구. 라는, 그런 부분을 한국의 작가분들에게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도 배우고 있는 중이구요. 한국의 그런 분들이, 젊음을 토대로 역사가 짧음을 바탕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오히려 굉장히 부럽습니다.
준호 : 그것은, 일본의 젊은 만화가의 그림이 극단적으로 기호화되고 있다는 것이라던가, 그런 룰의 얽매임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오구레 : 라기보단, 만화가라면 자유로운 발상 자체를 잊지않아야 한다. 라는 것에 촛점이 있다고 할까요. 일본의 만화가는 예전에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세대가 더 오래이면 오래일 수록 그렇습니다만, 정말 파격적인 면을 보이고 있고,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발상들입니다만 그것이 만화라는 것을 재미있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준호 : 하지만 지금의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실제로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습니다. 거기에 훌륭한 부분만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위해서는 개인적으로는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것 까지도.. 예를 들면 디폼의 감각이나 기술 같은 것도 영향받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메이져에서는 제약이 많기 때문에 성인물 시장도 적은 편이고, 굉장히 잘그리는데도 동인(同人)만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일본의 작가분이 그리고 있다고 해도 믿겨질 만큼 판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당히 닮아있습니다. 최근의 젊은 작가들은, 말을 사용하는 것도 굉장히 일본스럽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구요. (웃음) 하지만, 좋은 점을 '좋은 방향' 으로서 받아들이는 것과, 겉도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의 한국의 젊은 그림장이 분들은 겉도는 면도 없지 않다고 생각하여, 저로서는 그것이 조금 걱정입니다. 왜냐면 제 자신도 그런 방향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기 때문에... 저도 그런 것이 느껴질 법한 세대라서요. 한국어로는 '채혈(採血)' 이라는 한자를 써서, 문화를 흡수한다는 의미의 말이 있습니다. 저의 세대에는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와서 대중적으로 붐을 일으킨 사람이 몇 있어서, 한국에서 일본의 문화 같은 것을 하는 것이 붐이 된 적이 있어서 그걸로 인해 저같은 사람도 단순히 '채혈세대' 라고 불리는 것 처럼 되어버린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은 극단적으로 되어서, 저 처럼 그것에 약간 반감을 갖는 마인드라고 할까, 방어정신을 가지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곤 합니다.
디지탈과 아날로그
오구레 : 제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한국 분들의 그림은 채색의 경우 거의 대부분 CG 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수작업을 하시는 분은 계시는지?
준호 : 솔직히 한국에서의 그림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에게서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그리는 사람은 거의 없어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업계 등에서의 실무적인 면으로 들어가자면, 디지탈로 작업해 달라. 라고 요청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시 아마츄어 시절에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을 경험한 분은, 디지탈 작업을 해도 뭔가가 다르지요. 그런 경험이 축적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디지탈이 되어도 감각적인 면을 모른 채 방법론으로밖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합니다.
오구레 : 일본에서는 디지탈 그림보다는 아날로그 그림이 귀하게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최근 수년간 CG가 엄청나게 늘어난 이유로 인해서, 역으로 다시 아날로그로 회귀하자는 흐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분들은 그런 분위기는 전혀 없는지요?
준호 : 지금의 젊은 세대는 실패에 대한 불안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수십장을 그려서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이 한장이라도 나온다면, 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적은 편이죠. 자신이 정말 목숨 걸어서 그린다면 그만큼의 대가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정신이랄까요.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에 꽤나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 그런 면에서는 국가간의 다른 점이라고 볼 수도 있을까요?
준호 : 또한 일본과 한국의 다른 점이라고 하면, 인쇄의 퀄리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일본은 세계최고수준의 인쇄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의 인쇄소에서 나온 것이면 동인지도 수준이 높다라고 느꼈습니다. 한국의 인쇄소는 한번에 엄청난 물량을 감당하는 면에서는 기술이 발달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퀄리티로서는 발달되어있지 않지요. 실은 그것도 CG가 많아진 이유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면 아날로그로 일러스트를 그려서, 그것을 인쇄소에 맡겼을 때 인쇄가 아날로그의 퀄리티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점. 그렇다면 아예 컴퓨터로 색보정을 할 수 있는 디지탈이 메리트가 있기 때문에 인쇄소와 작가가 CYMK 등의 수치라던지 그런 것이 잘 맞는다면 보다 확실한 재현성을 낼 수 있지요. 디지털 수치는 정확한 면이 있어서 효율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아날로그의 재현성의 기술 이상으로, 디지탈 기술이 발달했다는 것이군요.
준호 : 거기에 디지탈은 이전에 했던 것을 다시 손보고 싶을 때 까지 수정할 수 있고, 재편집도 가능합니다. 역시 최근의 젊은 사람들은 디지탈이 하기 좋고, 손대기 쉬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에도 학생 시절이나 데뷔 전에는 아크릴이나 과슈를 사용하여 그렸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시간이 들었고...
오구레 : 여러가지 종류의 화구들을 제대로 쓰는 것은 어렵기도 하기 때문이죠.
준호 : 지금은 디지탈 방식을 쓰고 있습니다만, 역시 아날로그 시대가 없었다면 디지탈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으로서는, 아마츄어의 사람들이 디지탈만을 사용하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공부를 하는 시기에는 직접 손으로 그리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보고, 큰 그림은 정말 크게 그려 보고, 작은 그림은 작게 그려보고, 그런 것도 해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네요.
- 반대로, 오구레씨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그리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오구레 : 저는 아날로그의 일발감. 이랄까, 그런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긴장감이라고도 할까. UNDO 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집중력을 높이지요. 그래서 실제로는 그런 만큼 그리다가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여기를 이렇게 고치면 더 좋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들도 있다랄까. 실패라는 것을 버리지 않습니다. 버릴 수가 없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쌓아왔던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말이죠. 그것을 어떻게든 살려보자, 라고 생각하면 자기 자신이 상상하지 못했던 좋은 점이라고 해야할까, 이렇게 하는 방법도 있다는 재미있는 발견도 있어서, 그런 면에서는 역시 디지탈로서는 맛을 낼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한말씀씩 부탁드립니다.
오구레 :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작가분들은 젊으면서도 갑자기 엄청난 것이 그려진다는 그 시스템이, 뭐랄까 수수께끼라고 해야할까 위세라고 해야할까 (웃음)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일본과 한국, 서로간에 자극하며 좋은 의미에서의 라이벌로 있고 싶네요.
준호 : 좋아하는 작가분과 이렇게 만나뵙게되어 정말 기뻤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본 텍스트는 일본 주식회사 미술출판사 발행의 '계간 코미커즈(Comickers)' 2004년 봄호에 게재된 내용을 번역하였습니다. 내용의 권리는 대담에 참여한 작가분들과 해당 출판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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