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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감상문

위대한 개츠비, 왜 그는 데이지를 사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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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이렇게 재밌을 수도 있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소설가 김영하가 번역했다고 하더니,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옛날의 <위대한 개츠비>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멋진 소설을 만나게 해준 김영하와 출판사 문학동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젊게 탄생한 <위대한 개츠비>는 어딘지 신비로운 구석이 있다. 아름다운 문장과 뛰어난 묘사 때문일까. 그런 것도 있게지만, 독자를 완전한 제3자의 관찰자로서 포지션을 정해놓았다는 것이 큰 것 같다. 작가가 의도한 것 같지는 않으나 개츠비는 우리에게 관찰 대상이었고, 조금 멀리서 개츠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느낌은 객관적인듯 했고, 냉철했지만 그만큼 슬퍼보였다. 바보같은 개츠비. 개츠비는 왜 데이지를 포기하지 못했을까. (스포일러 없음)








 개츠비, 홀로 떠도는 무색투명한 바람


미국 현대 문학의 지평을 열었으며,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한권이라는 <위대한 개츠비>를 다 읽고 나면 그냥 '이 책은 개츠비라는 남자의 사랑이야기'라고 정의내려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개츠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힘들 것이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사랑한다는 사실 외에 개츠비의 진짜  속마음은 책 속에 없기 때문이다. 재밌게도 소설 속 등장인물들 역시 개츠비를 잘 모른다. 이 부분은 소설 전반에 흐르는 개츠비의 그 무엇과 닮아있다. 함께 있지만 따로 있는 느낌. 그건 '의문점'이기보다 '쓸쓸함'에 가까웠다.





거의 매일 파티가 벌어지는, 자수성가한 개츠비의 집. 수많은 손님들이 고급 자가용을 끌고와서 질펀하게 술자리를 벌이며 야한 농담과 자기 과시가 넘쳐나는 곳이다. 온갖 종류의 부자들 또는 부자처럼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 얘기만 할 뿐, 집 주인 개츠비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고, 그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다. 개츠비는 무성한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남자. 소문의 주인공일뿐 관심의 대상은 아닌 것이다. 파티를 열어줘서 고마울 뿐이고, 자신의 즐거움에 개츠비가 방해 하지만 않는다면 영원히 몰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쑥덕거릴 만한 것도 별로 없는 사람들 조차 개츠비에 대해서는 열심히 수군댄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개츠비가 세상 사람들에게 낭만적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증거였다. - page 60 -




 데이지, 아름다운 속물


개츠비의 첫사랑, 데이지. 그러나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다. 부자와 결혼해서 신분상승을 했지만, 여전히 처녀때 인기를 받고 있는 여자. 데이지는 온통 즐겁게 사는 일에만 관심이 있으며, 그의 남편 역시 거만하고 바람둥이다. 왜 개츠비는 그런 데이지를 포기하지 않았을까. 개츠비에게 데이지는 대체 어떤 존재였을까.





소설 속에서 데이지는 매력적인 여자로 나온다. 기혼녀지만 유쾌하고 화려한 삶을 보낸다. 어느날 등장한 개츠비는 한때 사랑했던 남자가 아니라 바다 건너편에서도 보일 멋지고 웅장한 저택과 아름다운 정원,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운 침실과 드레스룸, 욕실 등을 가진 소유주일 뿐이었다. 데이지가 원하는 것은 상류층으로서 많은 돈으로 화려하게 살아가는 것 뿐이다. 기본 심성은 착하지만 속물근성에 쩔어있는 일부 요즘 여자들의 모습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데이지 목소리에는 신중한 구석이 없어." 내가 말했다. "목소리에 가득한건......"

나는 망설였다.

"돈으로 충만한 목소리야." 개츠비가 불쑥 말했다. - page 151 -




 수많은 개츠비와 데이지들


이 책은 1925년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만 본다면 2013년 청춘남녀들이 겪고 있는 애정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랑과 결혼을 별개로 여기는 불행한 세태의 축소판 같다. 개츠비 역시 남의 여자가 된 사람을 다시 되찾고 싶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부유한 개츠비는 얼마든지 새여자를 만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에게 사랑은 오직 데이지뿐이었다. 데이지를 정확히 꿰뚫어 본 개츠비는 그녀를 향한 사랑을 왜 멈추지 못했을까. 바보같은 순정파와 속물의 만남. 그 결과는 이미 예정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왜 '위대한' 개츠비라고 했을까?


책 제목은 가장 함축적으로 책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위대한'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저자인 F.스콧 피츠제럴드는 어떤 의미로 '위대한'이란 단어를 넣어서 제목을 정했을까. 순수했지만 어리석었던 개츠비에 대한 비난을 반어법으로 표현했던 것일까. 아니면 열정적으로 일해서 부를 축적하고 첫사랑을 변함없이 사랑했던 한 남자로서 위대하다는 것이었을까. 평소같으면 후자에 무게를 더 두었겠지만, 피츠제럴드가 어떻게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 그의 말로는 어땠는지를 알게된 나로서는......둘 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츠비'는 피츠제럴더의 자화상이고, 결국 모든 것을 극복하고 예전의 화려했던 '위대한' 피츠제럴드로 돌아가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제목에 반영한 것은 아니었을까. 풀어서 해석하자면 '위대한 개츠비가 되라!'라는 자기 신념의 주문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개츠비처럼 재기하고 푼 마음 말이다.



 이 소설은 그 당시 사회상과 1차세계대전 후 재편되는 세계  질서 속 미국이라는 국가의 위상을 간접적으로 그렸다는 평론가들의 분석이 있다. 성공자와 실패자, 부자와 가난한 자, 상류층과 천민층, 어떤식으로든 나눠지고 쪼개지고 구분되는 사람들과 나라들. 불행히도 저런 방식은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



<위대한 개츠비>는 두껍지 않은 책이고, 문학동네에서 나온 번역본에는 해설이 매우 충실하게 실려있다. 그래서 리뷰 쓰는 것이 조금 힘들었다. 의도적으로 해설서의 내용을 고스란히 옮기는 것은 자존심이 상했다. 역시 모르는게 약이었다. 어쨌든 이제는 마음편하게 영화<위대한 개츠비>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원작을 얼마나 충실하게 영상으로 표현했는지 너무 궁금하다. 참고로 네티즌과 전문가의 평점은 서로 반대로 달리고 있다. 내가 그랬잖나. 개츠비에게는 신비로운 구석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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