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기>, 대한민국의 진짜 바이러스를 진단하다
★★★★★★★★★☆/감독 김성수/출연 장혁, 수애, 박민하, 유해진, 이희준, 김기현, 한효주 외
수상정보
28회 프리부르국제영화제(2014) 초청 장르영화(김성수)
8회 런던한국영화제(2013) 초청 박스오피스 히트(김성수)
50회 대종상영화제(2013) 후보 여우조연상(박민하)
영화 <감기>, 대한민국의 진짜 바이러스를 진단하다
추석 연휴 기간을 맞이해서 영화를 많이 보고 있다. 그 중에 첫번째로 추천할 영화는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감기>라는 한국영화다. 기대 이상의 재미와 메시지가 있는 훌륭한 영화였다. 다만, 극장에서 봤으면 감동이 덜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극장에서는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 많아서 잘 가지 않는다. <감기>도 시나리오 자체는 재난영화로서 아주 평범해서 만약 극장에서 감상했다면 나에게 감동을 주기 힘들었 것 같다. 이 영화는 방안에서 불끄고 혼자 봐야한다. 조용한 집에서 홀로 감상하다보니 배우들의 연기와 메시지 등이 내 안으로 많이 들어왔다. (스포일러 없음)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박민하에 대한 것이다. 영화 <감기>가 누적관객수 3백만명을 넘긴데는 미르(박민하)의 연기력도 크게 한 몫을 했다고 본다. 그 동안 여러 TV프로그램에 나왔기 때문에 카메라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겠지만, 나는 박민하의 연기력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나도 자칭 영화광이다. 아역배우가 핵심인물이 아닌 영화에서는 단순한 귀여움과 깨소금 역할을 하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박민하는 그것을 넘어서 영화의 완성도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느꼈다. 그런 생각이 든 한국영화는 <감기>가 처음인 것 같다. 지구(장혁)과 첫 대면하는 자리에서의 능청스러움과 신발없이 도망다니는 밀입국 외국인 노동자를 염려하는 모습, 특히 후반부에 군인을 향해 울부짖는 모습 등은 배우로서의 끼와 성장 가능성을 넘치도록 보여주고 있었다. (솔직히 전부터 박민하를 볼 때마다 '저런 딸 하나 갖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그래. 나 박민하팬이다. ㅎㅎㅎㅎ......ㅎㅎ....ㅎ;;;)
<감기>는 정치적 메시지를 분명하게 드러낸 영화다. 물론 인간사 모든 것이 정치적이고, 어떤 종류의 작품도 정치적으로 해석가능한 메세지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감기>는 죽음의 바이러스를 대하는 두 종류의 인간을 명확하게 대비시키면서 상황을 극적으로 만들어간다. 오락영화 차원에서 생각하면 은근한 설정보다는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이제 상상을 해보자. 실제로 서울에 36시간내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가 번졌다. 국민인 우리는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까. 만약 이명박 또는 박근혜정권 아래에 있는 국민이었다면 우린 정부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에 나온 총리의 주장처럼 사태를 진정시키려 할 것이다. 그들은 국민보다 국가가 먼저라는 착각에 빠진 부류이기 때문이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해야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정치인들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승만이 그랬고, 박정희가 그랬다. 그들을 추종하는 정치인들은 결코 국민을 우선시 하지 않는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정부와 새누리당의 태도를 보라. 현실이 영화보다 더 끔찍하지 않은가.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할 수 있습니다. - 총리 -
한 명의 국민을 살리려는 진심어린 노력. 그것이 국가를 유지하는 진정한 힘이다. 권력으로 언론과 법치를 흔들면서 국민을 통제하려는 나라는 독재국가 아닌가. <감기>를 다 보고 나니까 세월호 참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제는 대충 마무리하자는 보수세력들과 장악된 언론의 사악함은 현재진행형이다. 산채로 수장당한 영혼들은 아직 우리곁에 머물러 있는데 대한민국 권력자들은 이해득실로 판단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차인표(대통령)의 결단은 당연하면서도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책임소재를 걱정하기 보다는 생명의 소중함, 인간으로서의 존귀함을 지키려는 노력에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그렇다. 이 영화의 포인트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바로 '인간', 우리 자신이었다.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 대통령 -
내가 <감기>에서 던진 정치적 메세지에 동의하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준 것은 결코 아니다. 배역, 연기, 연출이 영화를 아주 흥미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재미없는 영화에 평점을 후하게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난 블로거이지 양심없는 정치인이 아니니까.
8월 15일을 개봉일로 잡은 것도 <감기>의 의도를 어느 정도 반영했다. 전염병, 국민, 생명, 정치, 미국, 군사협정 등을 키워드로 만들어진 <감기>는 우리 국민의 진정한 독립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좋은 땅에서 살다가 죽고 싶다는 절규는 영화의 모든 장면을 관통하는 한마디였다. <감기>의 결말은 다행히도 해피엔딩이다. 그것이 현실이 되도록 항상 깨어있는 사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할 말은 많지만 딱 한마디만 더 하고 마무리하자. 영화 <연가시>도 재난영화로서 <감기>와 비교할 수 있다. 나는 <연가시>를 꽤 지루하게 감상했다. 이유는 이야기의 구조가 너무 단순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사건의 중요성만 남고 긴장감과 휴머니즘이 부족했다. 저 2가지는 재난영화의 필수요소라고 해도 될 정도인데......그것이 없으니 재밌을리가 없는 것이다. 김명민은 영화복이 너무나 없는 것 같다.
이번 추석특선영화로 <감기>를 방영했으니 앞으로 케이블 방송에서도 자주 보여줄 것이다. 아직 감상하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꼭 보시라. 뻔한 스토리지만 가슴에 큰 의미를 남기는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