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야, 괴물을 인간으로 만드는 방법
★★★★★★★★☆☆/감독 정주리/출연 배두나, 김새론, 송새벽, 김진구, 손종학 외
수상정보
39회 토론토국제영화제(2014) 초청 시티 투 시티(정주리)
16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2014) 초청 스트롱아이(정주리)
63회 멜버른국제영화제(2014) 초청 악센트 온 아시아(정주리)
67회 칸영화제(2014) 초청 주목할만한 시선(정주리)
도희야, 괴물을 인간으로 만드는 방법
정주리 감독의 첫번째 장편영화 <도희야>는 괴물들의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아, 흥미롭다고 하면 예의가 아니겠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감정적인 임팩트가 다소 약하다는 느낌이 들다보니 주제의식 역시 도드라지지는 못했다. 그래도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시작부터 결말까지 거슬리는 것 없이 흘러간다.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영화 <도희야>의 속마음을 살짝 훔쳐보자. (스포일러 없음)
서울에서 좌천되어 작은 시골의 파출소 소장으로 발령받은 이영남(배두나). 그 곳에서 그녀는 중학생 선도희(김새론)을 알게 된다. 지저분하고 늘 혼자 다니는 소녀는 친구가 없다. 아버지와 할머니에게조차 마음을 열지 못한다. 가족이 어린 소녀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 가까운 사람들과 거리를 두어야 했던 두 여자의 만남은 끝과 끝이 만나는 동그라미 같은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인연은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는데서 시작하는 법이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이영남 : 그렇게 맞고만 있으면 안 돼.
선도희 : 술 안 마실땐 안 때려요.
이영남 : 도희야, 어른이 아이를 때리는 건 아주 나쁜거야.
영남은 도희에게 낮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독백이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타인에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른이 아이를 때리는 것은 나쁘다. 그럼 어른이 어른을 때리는 것은 덜 나쁜 일일까. 잘못했다면 때리는 것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일까. 이 유치한 질문 속에 우리의 고민이 있고, 영화의 주제가 숨어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괴물이다. 덜 나쁜 괴물과 많이 나쁜 괴물로 구분될 뿐이다. 사고치고 내려온 영남과 왕따 소녀 도희가 서로를 걱정하며 위로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정주리 감독은 인간이든 괴물이든 마음을 열고 다가서야 한다고 말한다. 서로가 공감할 수 없더라고 용기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때론 선의가 오해를 불러오기도 하지만 결국 따듯한 마음은 통하기 마련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괴물은 박용하(송새벽)이다. 그가 술과 폭력으로 점철되어 그를 괴물로 표현했지만, 사실 너무나 평범한 괴물이다. 그는 동네에서 한 명뿐인 젊은 노동자로 온갖 대소사를 도맡아 챙긴다. 도희의 계부이기도 한 그는, 술마실 이유가 있었고, 때릴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마셨고 때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처럼 살아간다. 늙은 홀머니를 모시고 사는 그로서는 아내도 없이 촌구석에서 젊음을 보낸다는 것이 불행하고 불안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박용하는 도희보다 더 큰 연민을 느끼게 한다. 도희에게는 영남이 있었지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괴물을 인간으로 만드는 방법은 결국 '진심어린 관심'이다. 그런 관심도 괴물의 심정에 100% 공감하도록 만들지는 못할지라도,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그 위로는 다르게 생긴 모양의 블록 하나가 온전한 그림으로 채워지는 퍼즐의 한 조각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고, 모두가 하나의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괴물을 인간으로 만드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세상이 인간을 괴물로 만들고 있다. 괴물을 양산하고 있다. 그것이 이 영화의 본질적인 주제이다. 최근 세월호 유가족인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에 대한 온갖 논란이 바로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 정권이, 일부 불온한 세력이 김영오씨를 괴물로 만들고 있다. 억울하게 죽어간 딸의 아빠를 이 더러운 땅이 흉직한 괴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더불어 야당과 세월호 유가족 전체가 대한민국의 안녕을 저해한다는 괴물 집단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잊지 말자. 괴물은 자신을 창조한 인간을 잊지 못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시체로 만든 괴물처럼 기억을 조각조각 새기고 살아간다. 그것이 보통 괴물의 운명이다. 그리고 더 거대하고 악질적인 진짜 괴물을 상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을 응원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도 언젠가는 다른 괴물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