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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영화/내가 정한 명작

영화 '컴플라이언스', 당신의 옷을 벗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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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크레이그 조벨/출연 앤 도우드, 팻 힐리, 드리머 워커



여우조연상(앤 도우드), 독립영화 톱10..........84회 미국비평가협회상(2012)

경쟁작(크레이그 조벨)......23회 스톡홀름국제영화제(2012)
스릴(크레이그 조벨)............56회 BFI 런던영화제(2012)
오피셜 판타스틱 경쟁(크레이그 조벨)........45회 시체스국제영화제(2012)
미드나잇 패션(크레이그 조벨)....................17회 부산국제영화제(2012)
국제경쟁(크레이그 조벨)..............65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2012)
신인감독(크레이그 조벨)........55회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2012)
여우조연상(앤 도우드)......28회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2013)
여우조연상(앤 도우드).........18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2013)

  컴플라이언스, 당신의 옷을 벗기는 사람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릴러영화다. 비슷한 사건이 미국 전역에서 70건 이상 발생했다. 작은 햄버거 가게에서 벌어지는 이 기가막힌 사건을 통해 우리는 사회가 어떻게 망가지는지 엿볼 수 있다. 평범한 시민들이 정치판의 타락을 비판하기 위해 작은 촛불을 들었을 때 그것은 하나의 양초가 아니었듯이 영화 '컴플라이언스'가 시사하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범인이 일찍 등장해서 딱히 스포일러라고 할 것은 없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살펴보자. 전날 직원들이 퇴근하면서 냉동고를 제대로 닫지 않아서 아침부터 책임자 산드라는 화가 나 있는 상태다. 안에 있던 베이컨과 피클이 모두 상한 것이다. 산드라는 아직 지점장에게는 보고 하지 않았고, 오늘은 금요일인데 직원도 한명 부족해서 많은 손님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산드라는 직원들에게 오늘 판매에 단단히 주의를 주면서 일과를 시작한다. 가게를 오픈하고 영업을 시작하던 중 경찰에게 전화가 와서 매장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했음을 산드라에게 알린다. 용의자는 베키라는 여직원. 경찰은 자신이 도착하기 전까지 베키의 소지품을 조사해달라고 요청한다. 담당 경찰은 다른 사건조사가 길어져서 일찍 도착하지 못하자 베키를 사무실에 구속해 놓고 감시 및 추가 조사를 요청하는데......




 공권력의 정의 vs 인권의 가치






이 영화는 패스트푸드 사무실에서 거의 모든 장면이 촬영된다. 왜냐하면 베키는 용의자로 몰려서 그곳을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수색을 당하고 휴대폰마저 압수된다. 감시자까지 붙어서 그녀는 외부와 완전하게 차단된다. 경찰의 전화 한통으로 이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벌어진다. 이상하지 않나? 베키는 용의자지 범인이 아니다. 이건 평범한 사람들에게 공권력이 어떤 모습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경우다.


공권력이 정의실현이라는 목적으로 사람들에게 힘을 과시하기 시작하면 인권은 잠시 뒷전으로 물러가는게 정상일까? 공권력이 아니라도 특정 단체나 조직은 한 명의 인간을 취약한 상태로 쉽게 만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보이스피싱이 그렇다. 검찰, 은행, 카드사라는 거짓말로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뺏는 일은 현실에서도 벌어진다. 고작 한 통의 전화일 뿐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왜 그들에게 속는 것일까. 그것은 '조직'에 대해 복종을 강요했던 인간의 역사때문이다. 혹시 범죄자의 인권도 왜 철저하게 보호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사실 그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저런 질문 자체가 '인권의 가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아주 나쁜 질문이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들이 당하고 사는 이유






적당히 나쁜 사람으로 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산드라는 매장의 책임자이고, 베키는 직원이다. 베키는 직장에서 해고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의심받고 싶지 않았고 이 일을 빨리 해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이 부당하게 대우받는 것을 허용하면 안된다. 결국 경찰의 무리한 지시를 허락한 대가로 베키는 스스로가 알몸이 된 것이다.


착한 사람들의 특징이 그렇다. 권력과 권위에 대한 신뢰가 맹목적이다. 그들은 자신보다 윗사람이고 많이 배웠으며 힘이 있다고 믿고 쉽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다. 왜? 도대체 왜 그래야만 하지? 부당하게 대우받는 것을 허용하면 그 다음은 당신을 이용하려 드는 것이 힘있는 자들의 속성이다. 바보들에게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찰 : 베키 당신은 착한 사람이다. 산드라도 지금 무척 힘들 것이다. 산드라를 위해서 힘들더라도 괜찮은 것 처럼 연기를 해 달라. 그게 나나 산드라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베키 : ......알았어요.




 누가 진짜 나쁜 사람인가






이 상황을 만들어가는 세명의 인물이 있다. 남을 속이려고 하는 사람,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 사람, 거짓말을 진실이라 믿었던 사람. 이 영화의 주제는 사건 내용이 아니라 산드라의 태도에서 나온다.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가짜 경찰과 바보처럼 속은 베키에게도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것은 이 영화의 주제와 조금 거리가 있다. 베키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다. 어리석은 여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냉동고 문제로 산드라는 짜증이 나 있었다. 바쁜 금요일에 한 명은 결근이다. 직원들에게 불만스럽고 젊고 예쁜 베키에게 약간의 질투심 또는 시기심도 느낀다. 경찰의 지시가 부당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법집행에 협조하고 직원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지시에 따른다.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나중에 '나는 몰랐다.'라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 사회가 병들어가는 이유는 산드라 같은 사람들이 책임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는 '복종'에 대한 경고를 담은 고발영화이다. 오래 전에 만들어진 '복종'이라는 실험 동영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그 영상을 봤다면 이것이 그것의 '영화판'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에서 저런 사건이 벌어졌다면 상급자에게 순종하는 것이 미덕이고 생존의 법칙인 한국사회의 풍경은 너무도 선명하게 보이는듯 하다.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조심하자. 이제 곧 당신이 옷을 벗어야 할 순서가 온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하자. 경제가 나빠지면 사회도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부패권력자들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옷을 벗기는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력과 메시지가 너무 좋아서 오랜만에 명작 카테고리에 올리게 되었다. 이 영화에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단 한명의 사람이 등장한다. 그가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든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면 영화를 꼭 보도록 하자. 다소 선정적인 장면이 포함되어 있어서 중고생 자녀들과 함께 보기는 힘들지만 '컴플라이언스'는 강력 추천 영화다. 영화 후반부에 베키에게 건내는 경찰의 한마디를 끝으로 리뷰를 마친다.


"옷을 벗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 왜 싫다고 하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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