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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영화

캐리, 명작 고전 공포영화를 다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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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킴벌리 피어스/출연 클로이 그레이스 모레츠, 줄리안무어, 가브리엘라 윌드, 알렉스 러셀



내가 꼬맹이였을 때 동네에 붙어있던 영화 '캐리(carrie)' 포스터가 생각난다. 그때만 해도 동네마다 포스터를 풀칠로 붙이고 다니며 영화홍보를 하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밤이 되면 그 포스터 앞을 제대로 지나가지 못했다. 하필 그 포스터가 화장실 문에 붙어있다는 것도 무서웠고, 피범벅에 눈만 희번덕거리며 노려보던 얼굴도 소름끼쳤다. 그런 추억의 공포영화가 2013년 새롭게 리메이크 되었다. 원작이 주는 아날로그한 공포감은 없지만 내겐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공포영화 매니아라면 '캐리'를 안볼 수 없을 것이다.




▲ 1976년 '캐리'의 한국판 포스터는 몇 종류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에는 위 사진과 매우 비슷한 장면이 들어가 있었다.



영화 '캐리'는 스티븐 킹의 소설이 원작이다. 그를 스타로 만들어준 첫번째 장편소설이었다. 이후 발표하는 소설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공포의 제왕'이라는 별명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던 것이다. 2013년 캐리의 줄거리는 원작 소설이나 영화와는 큰 차이점이 없는 것 같다. 너무 오래된 작품이라서 정확한 비교는 어렵지만 말이다.





■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캐리 화이트(클레이 모레츠)는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여주인공이다. 소심하고 친구도 없다. 늘 사람들 속에서 살지만 친구는 없다. 그냥 그들 주변에서만 맴돌뿐이다. 그러다 짜증, 분노, 긴장 같은 감정이 치밀어 오르면 물건이 움직이거나 부서지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런 것을 전혀 인식을 못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런 능력도 친구를 사귀는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자신의 생활에 변화를 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덧 학교 졸업식이 다가오고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할 무도회 파티로 학생들은 들떠있다. 이제 몇 명의 친구는 캐리에게 사과 차원의 배려를 준비하고, 캐리를 왕따시키고 괴롭힌 다수의 학생들은 그네에게 마지막으로 선사할 최악의 이벤트를 계획한다.





■ 스토리가 좋은 영화 ┃'캐리'는 공포영화치고 스토리 비중이 적지 않다. 특히 엄마와 딸의 관계가 그렇다. 이번에 리메이크된 '캐리'에서는 엄마가 과거에 강간을 당했던 여자로 나온다. 그일로 인해 캐리를 임신하게되지만 출산까지의 과정이 비정상적인 것을 깨닫고 그녀는 '캐리'를  '불길한 아이' 정도로 인식하게 된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이후 캐리의 성장이 순탄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외국은 고등학생 정도만 되어도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살아가지만 캐리는 갓난아이처럼 커갔던 것이다. 엄마는 딸의 순결에 집착하며 이성친구도 사귀지 못하게 하는 등 자식을 보호가 아닌 세상과 격리시키려는 듯한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녀가 왕따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엄마때문이었다.





■ 예뻐서 문제?! ┃ '캐리'는 무섭다기 보다는 흥미진진한 공포영화다. 결정적으로 그렇게 된 이유는 여자주인공이 너무 예쁘다는 것이다. 솔직히 클레이 모레츠를 캐리로 캐스팅한 감독의 선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귀엽고 깜직한 스타일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예전에 헐리웃판 '렛미인'을 통해서 뱀파이어로 등장했을 때도 사실 약간 거슬렸었다. 그나마 인간이 아닌 설정이라 그녀 특유의 창백한 표정에 분장을 더해서 크게 어색하지는 않았지만, '캐리'라는 영화는 시간적배경이 현실 아닌가. 이런거 보면 여배우라고 예쁜게 꼭 좋은건 아니다. (참고로 스웨덴판 '렛미인'이 훨씬 음산하고 재밌다.)




▲ 1976년 작품인 원작 '캐리'의 여주인공과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원작에 나왔던 배우 '씨씨 스페이식' 같은 스타일이 '캐리 화이트' 역할에 더 잘 어울렸을거다. 그녀는 어딘지 피곤, 긴장, 연민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탁월했으며 격렬하게 감정을 드러낼 때는 무섭기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더 빠르게 이해되도록 말하자면 2013년 '캐리'에 나온 그녀의 엄마 같은 분위기가 풍겼어야 했다. 항상 불안해보이면서 오로지 종교에 의지하는 광인의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말이다.




현실에서 왕따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캐리'에서 대리만족이 느껴지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렸을 때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들에게 얼마나 복수를 해주고 싶었던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상한 인간 취급을 하는 사람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는 상상은 정말 통쾌한 일이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1976년과 2013년의 '캐리'는 표현방식이 조금 바뀌었을 뿐 두가지 모두 슬픈영화이다. 아이들의 장난처럼 시작된 왕따가 한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니까 말이다. 실제로 현실에서는 자살과 우울증으로 이어지지 않은가. 자신과 다르다고 괴롭히는 행태를 인간의 근본적인 폭력성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그건 조금 비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사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 사회에서 어쩌면 '진짜 캐리'는 이 순간에도 모멸감 속에서 고통받고 있을지 모른다. 내 자식뿐만 아니라 자식의 친구들에게도 관심을 주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캐리는 초능력을 발휘했지만 현실에서는 범죄로 나타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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