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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영화

인류멸망보고서, 미래를 경고하는 블랙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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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지운 임필성/출연 류승범 고준희 김강우 김규리 송새벽 배두나 외

 

 

 

<인류멸망보고서>, 제목이 주는 진지함과 암울함은 우리의 예상을 깨고 옴니버스 형식의 블랙코미디였다. 그렇기 때문에 첫인상은 신선하게 느껴진 것이 사실이지만, 뒤끝까지 깨끗해서 문제다. 즉, 남는게 별로 없는 영화라는 말이다. 공포영화는 볼 때만 무서우면 되고, 액션 영화도 볼 때만 화끈하면 된다. 그러나 블랙코미디는 필수적으로 뒤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장르적 완성도가 높은 것 처럼(?) 평가될 수가 있다. 이 영화에는 '뒤끝'이 많이 부족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볼 만하다. 옴니버스 형식은 물론이고 국내에서 흔하게 접할 수 없는 소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보자;;;

 

 

임필선 감독 <멋진 신세계>

 

좀비 매니아에게 단비를 내려줬다. 영화 <이웃집 좀비>에 이서 두번째로 좀비가 등장하는 한국영화다. 그것만으로도 영화적으로는 의미가 있겠으나 그게 전부라는게 좀 아쉽다. 물론 이 영화를 통해 대단한 이슈가 되었던 광우병 논란이 떠오르기는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광우병은 이미 남의 나라 일인 것 처럼 식상해진 소재 아닌가. 슬프게도 말이다. 오염된 사료로 길러진 가축들이 인간 배를 채워주고 대신 파괴할 수 없는 질병을 남긴 것이다. 그런데 정말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우리는 '광우병'이라는 치료법 없는 질병을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만 해석한다는 것과 소고기는 물론이고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정치인들이 정한 기준에 의해서 유통이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관여할 수 없다. 졸라 무섭지 않은가.

 

이 영화는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다시 우리들에게 쉽게 되돌아와서 임계점에 다다르면 <멋진 신세계>를 맛 볼 수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근데 표현 방법이 너무 직설적이고 뻔해서 경고의 메세지가 너무 가볍게 느껴진다. 한가지 주목할 사실은 <멋진 신세계>는 6년 전 광우병 논란이 있기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임필선 감독 <해피 버스데이>

 

 차라리 이 영화가 상상력이나 보는 재미 차원에서는 <멋진 신세계>보다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은 지구 멸망을 앞두고 한 가족에게 일어나는 모습을 그렸다. 그런데 스토리가 흥미롭다.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가 영화로 탄생한 것 같다. 우주 생명체의 놀라운 능력으로 인간들의 소원을 들어주는데, 문제라면 이건 들어준 것도 아니고 안들어준 것도 아닌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냥 교훈을 얻어보자. 간절히 바라면 '꿈은 이루어진다'. 그러니 '꿈 없는 인간'으로 안주하지 말고 간절히 바래보자. 다만, 절대자의 방법으로 성취를 허락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과정은 고통스럽더라도 마지막에는 희망을 맛보게 될 것이다. 원래 신은 얄굿다.

 

 

김지운 감독 <천상의 피조물>

 

 

어려운 영화다. 그래서 있어 보이기도 하고 뒤끝도 있지만 관념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 영화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로봇' 이야기 이다. 그래서 불교에서 등장하는 '공(空)의 사상'이 영화 전반에 깔려있다. 그렇다면 '공(空)'이란 무엇일까. 나는 모른다.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스님들도 많이 안계실 것 같고, 알고 있다해도 타인을 말로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 하리라 생각한다. 다만, 공(空 : 빌 공)이란 유(有)와 무(無)로 분별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뿐이다. 불교적 사상을 논하는 것은 지금 쓸데없는 일이다.  평범한 인간은 일단 평범하게 가자.

 

지각이란 분별한다는 말이고, 분별이란 앎을 나누고 갈라놓는 것 따름 입니다. 모든 일체 중생이 동일 중성을 가지고 있는데 지각이라는 것이 하나는 부처로 하나는 기계로 나누고 갈라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지각이 불변의 실체라고 오인하고 집착함으로써 분별을 일으키고 고통 받습니다. 지각은 공이고 지각되어지는 현상도 공입니다. 나 또한 지각되어지는 공의 현상이니까 공의 마음으로 보아 주십시오. 적관 하십시오.  -인명 스님(로봇)-

 

깨달음을 얻은 로봇과 창조자 인간 사이에 갈등이 존재한다. 분별하려는 창조자와 분별의 대상이 되는 부처 로봇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설정 자체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다만, 국내 영화로서는 처음이라는 것이 의미가 크다. <천상의 피조물>은 개인적으로 '존재론'에 대한 이야기로 이해했다. 인명 스님은 분별하지 말라 했지만 나는 아직 득도 하지 못했으니 이해해주시겠지. 인간과 로봇은 엄밀히 따지면 둘 다 피조물에 불과하다. 존재론에 대한 지각이 서로 다를 뿐이다. '있음'과 '없음'으로 구분하는 일은 고통과 오해만을 불러온다. '바른 것'과 '그른 것'으로 구분하는 것도 그러하다. 그렇다고 허무함이나 인생무상 따위를 떠올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어쩌면 '공(空)'은 '깨달음 그 자체'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로봇과 인간의 경계선은 그 깨달음에 있다 하겠으며, 미래는 '깨닫는 자'가 주인일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메세지를 담고 있다. 헉!!! 설마 이것이 '공(空)의 사상'일까?!! 이런, 리뷰하다가 나 득도하게 생겼네;;;

 

하여튼 잔상이 남는 영화다. 그 잔상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하기 힘들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인류멸망보고서>는 재미없다. 그래서 실패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실험정신이 멈추는 것은 완전 반대한다. 상업 논리에 좌지우지 되는 것은 예술인들에게는 수치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영화 매니아들이 이런 영화에도 관심을 갖어야 할 것이다. 우리도 '인명 스님'을 본받아 '깨달음'이 주는 '혼란'을 뒤로하고 훌륭한 명작 영화들을 미래의  후손에게 선물로 남겨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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