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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영화

애프터라이프, <식스센스>의 향기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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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의 리뷰는 시를 쓰는 느낌으로 해야할 것 같다. 그만큼 미스터리 영화로서 오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다보니 네티즌의 일반적인 평가보다 후한 점수를 주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여러분은 이 영화에게 과연 몇점을 줄수 있을까. 영화를 볼때마다 자연스럽게 추리하게 되는데 완벽하게 나를 속인 것도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감상할 분들을 위해 최대한 배려하는 마음으로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 뒤로 사라져버린 그림자의 정체를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경험을 나누기 위해. 당신의 상상력을 비웃을 영화 <애프터라이프(After Life)>. 이제 그 속으로 잠시 여행을 떠나보자. (스포일러 없음)




앨리엇(리암 니슨)은 친절하고 꼼꼼한 장의사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품격있게 만들어 주고, 그 가족들의 슬픔을 함께 나누려는 사람이다.  살아생전 고인이 좋아하는 꽃을 항상 준비하고, 얼굴 화장부터 잘 어울리는 옷까지 섬세하게 챙긴다. 아마 영화 속 동네 사람들은 그의 이런 직업정신을 꽤 높이 평가했으리라. 장의사라는 직업은 사실 '죽은 사람'보다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 필요한 직업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산 자가 갖고 있을 미안함, 후회, 그리움 같은 감정이 '죄책감'으로 남지 않도록 마지막에 최선을 다해주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장의사니까. 그런면에서 보통 '희생'을 의미하는 보라색의 커튼은 그에게 어울리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애나(크리스티나 리치)는 우울증으로 보이는 약을 수시로 복용하는 여자다. 애인과의 섹스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무기력증과 자주 예민해지거나 우울함에 괴로워하는 그녀는 살아있어도 산 자가 아닌 것 처럼 차갑다. 그런 성격의 애인을 둔 덕분에 애나의 남친 폴(저스틴 롱)은 애나를 사랑하면서도 자주 다투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폴은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시카고 본사로 발령을 받고 애나에게 함께 가자고 할 예정이었다. 반지도 미리 준비해서 사실상 청혼 프로포즈와 다를 바 없는 이벤트를 준비하고 그녀와 데이트를 한다. 그러나...여기서 그녀의 병이 또 도졌다. 폴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본사 발령'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결별 선언으로 받아들이고 자리를 뛰쳐나간 것이다. 황당한 폴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그녀를 따라가 보지만 속수무책. 그녀는 울면서 빗 속 운전을 한다. 그리고 죽음의 늪에 빠지고야 만다.


산 자와 죽은 자로 만난 두 사람. 앨리엇은 당신이 죽었으며 여기 당신의 사망확인서가 있다고 보여준다. 평범해 보이는 이 장면은 참 흥미로웠다. 죽은 사람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니. 그럼 애나가 죽었다는 것인가 살았다는 것인가. 비밀은 이렇다. 앨리엇은 장의사로서 영혼과 대화가 가능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물론 애나는 믿을 수 없다며 화를 낸다. 앨리엇도 화를 낸다. " 당신의 죽음이 내 탓은 아니에요! 죽은 사람들은 왜 항상 내게 화를 내는거죠!"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녀는 영안실 안에서 이상한 환상을 경험하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는데. 결국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 앨리엇과 교감을 시작한다. 그때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애나 : 사람들은 왜 죽는거죠?
앨리엇 : 삶을 돋보이게 하려고 그런 거죠.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 어떤 종교적인 설명보다, 어떤 철학적인 설명보다 '인간과 삶'의 본질에 진지한 고민를 던져주지 않나. 나는 저 대사가 나왔을 때 추리해왔던 내용들이 한 순간에 허물어지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 그녀는 생전에 하지 못한 일과 사랑하는 남자에 대한 미안함을 가슴에 묻고 7일 후 자신의 장례식을 기다리게 된다.


- After [ǽftər] : ~ 뒤에, ~ 지나서, ~계속하여
- Life    [láif] : 생명, 목숨, 인생, 사람, 생활, 구원

'사후세계'로 해석해야 정확할까, 아니면 '구원 이후'이라고 해야 적당할까.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영화 제목에 대해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울렸다면 당신은 영화를 제대로 감상한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아도 해도 상관없다. 당신은 아직 살아있고, 원했던 삶으로의 반전 기회도 다시 만들수 있으니까.

'나이만 젊다고 청춘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 것 처럼 '숨 쉬고 있다고 살아있는 사람은 아닌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뉴스를 보라. 얼마나 나쁜 인간들이 많이 나오는지. 얼마나 많은 권력자들이 불평등한 법치를 주장하며 산 자를 죽은 자 취급하는지! <애프터 라이프>를 영어로 어떻게 해석하든지 이 영화는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볼만한 영화다. 죽은 자도 영화를 볼 수 있다면 말이다.

<애프터 라이프>를 포함해서 리암 니슨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를 총 3편 봤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났다. 훌륭한 캐스팅이었다고 생각하며, 폴란드 출생의 '아그네츠카 보토위치 보슬루'라는 여자 감독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영화였다. <애프터 라이프>는 2001년 선댄스에서 극찬을 받은 <파테(pate)>이 후 두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애프터라이프>는 사람으로 치면 둘째다. 둘째가 이정도면 첫째도 꽤 볼만하지 않을까. 그녀의 처녀작이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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