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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영화

돌이킬 수 없는, 누가 미림을 죽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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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수영/출연 김태우, 이정진, 정인기, 김창숙 외


자기계발 서적에는 이런 말이 종종 나온다. '한번의 말이나 행동이 인생을 완전히 바꾼다.' 당신은 그런 경험이 있는가. 없을 것 같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다. 굳이 '인생'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이란 후회는 인간에게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지 않던가. 차이가 있다면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과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사는 사람'으로 구분될 뿐. 여기 한번의 죄값을 톡톡히 받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사람도, 형벌을 내린 사람도 아무것도 얻은게 없다. 그렇다면 '돌이킬수 없는 것'은 과연 무엇이며, 어느 쪽에 둥지를 틀었을까.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의 속으로 잠시 들어가보자. (스포일러 없음)



충식(김태우)은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7살 딸 미림이와 함께 살면서 꽃집을 운영한다. 아내가 등장하지 않는 것을 봐서는 이혼 또는 사별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처럼 먹고살기 힘들 때는 아내가 멀리서 공장을 다니든, 식당에서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 스토리를 봤을 때 충식은 철저하게 고독한 남자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미림이가 실종되었을 때 들어난다.  그를 위로하는 사람은 담당 형사 외에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다. 충식에게는 가족이 없다는 것이다. 나중에 생각해보건데, 만약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그 옆에 슬픔을 나눌 사람이 있었다면 영화처럼 가슴아프게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림이가 실종되기 한달 전 세진(이정진) 가족은 이곳으로 이사왔다. 그런데 그의 가족은 모두 조용하다. 엄마(김창숙)와 동생인 유치원 선생님(임성언)도 그러하다.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일까. 한적한 시골로 이사와서 세진은 자전거 대여점을 한다. 그런데 왜 세진은 수많은 직업 중에 '자전거 대여점'을 하게 되었을까. 리뷰를 쓴다고 두번째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것인데, 그는 현재에 살면서 현재에 있지 못한 남자다. 그는 남들처럼 시간 속을 달려가고 싶었을 것이다. 자전거 위에서 발을 구를때 마다 공기를 가르며 새로운 미래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었을 것이다. 세진은 항상 맨 윗단추까지 반듯하게 채운다. 천조가리 안에 있는 실체가 무엇인지 누가 알겠으며, 누가 관심을 갖겠는가. 오히려 사람들은 갑갑해 보이니까 풀고 다니라고 하겠지만 그것은 그의 트라우마다. 그런 점에서 세진에게 자전거는 해방구다. 세상을 빠르게 지나가면서 그들과 섞인 것도 섞이지 못한 것도 아닌 상태를 만들어주는 해방구. 왜냐하면 세진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어린이 강제 추행 전과자'였으니까.
 


결국 미림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이 되고, 세진의 전과기록은 입 싼 형사에게서 흘러 나온다. 이때부터 동네 주민들은 세진과 그의 가족들을 벌레보듯 바라보게 되고, 세진의 여동생은 직장까지 잃게된다. 아들의 무죄를 믿는 세진의 엄마는 다시 이사를 가고 싶어하지만 딸의 절규에 이내 포기하게 된다. 세진은 유력한 용의자지만 증거가 없다. 그러나 수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세진과 미림이 함께 있는 모습을 봤던 증인들이 등장하게 되고, 충식의 슬픔과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어간다. 세진은 아무런 말도 없이 손가락질을 받고, 망신창이 된 가게에 대해서도 어느 누구에게 하소연하지 않는다. 세진은 그렇게라도 세상 속에 머물고 싶었으나 결국 가족을 위해 혼자 동네를 떠나기로 결심을 한다. 세진은 정말 미림을 죽였을까.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은 꽤 슬픈 영화다. 김태우의 슬픔과 분노는 에너지 100%를 쏟아 부었다고 해도 될 만큼 인상적이었고, 꽃미남으로만 생각했던 이정진의 엔딩 씬은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엔딩에 세진과 미림이 함께 등장하는데 세진이 마지막에 보여준 메세지는 '구원에 대한 강렬한 희망'이었다. 세진은 미림을 통해 아주 간절히 구원받고 싶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세진의 처절한 울림을 보여준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실 것이다. 결정적인 내용을 리뷰에 쓰지 않으려는 나의 원칙때문에 좀 더 섬세하게 다루지 못하는 점이 무척 아쉽다. 그러나 꼭 한번 영화를 보시라. 어떤 캐릭터에게든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내용과 거칠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운명같은 삶이 오버랩되면서 짠한 소주 한잔 생각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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