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째로 소개할 명작영화는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The Lives of Others)'입니다.
저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탄성과 함께 눈물이 나올 만큼 벅찬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머릿속에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잠깐이지만 몸이 아주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더군요. [스포일러 없음]
이 영화는 동서독이 통일되기 전에 동독의 예술가와 비밀경찰의 삶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서 대한민국 MB정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할 정도로 영화에 급속하게 빠져들었습니다. 아마 정치에 관심있는 블로거가 이 영화를 봤다면 저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주의에 빠진 동독 권력자들이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을 부당하게 감시하고 통제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옳다는 신념도 현재의 부도덕하고 자격없는 권력자들과 무척 닯아있죠.
율리히 뮈헤(하우프트만 게르트 비슬러 役)
"잘못하지 않은 사람을 우리가 가둬둔다고 생각하나?"
"유무죄를 식별하기 위해 지칠때까지 심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
저는 비밀경찰의 저 대사가 과거에만 존재했던, 화석이 되버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영화가 관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과 저 대사가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만 1980년대의 사회주의 국가와 2011년 민주국가의 차이점에 대한 고민이 들더군요. 민주주의 이념으로 건국었으나 부패가 만연한 국가는 사회주의 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포폰과 민간인 사찰 논란의 현 정부와 도청이 일상화된 영화 속 배경이 전해주는 현실의 암울함도 비슷하고 말이죠.
비슬러는 도청과 심리의 전문가입니다.
정부에 불만을 갖고 있을 듯한 사람들을 감시하고 증거를 만들어내서 엄정하게 법과 원칙을 적용하는 사람이죠. 비슬러는 자신의 조국인 동독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불순한 국민들로부터 사랑하는 조국을 지키는 '방패'면서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도 냉정하게 '창'이 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믿는 인물입니다. 재밌는 것은 이런 그의 성격은 역설적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법 적용이 되야한다는 믿음은 인권의 본질과 닮아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런 그에게 게로르그 드레이만을 감시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옵니다. 드레이만은 아름다운 아내이자 배우인 아내를 가진 유명한 예술가 입니다.
세바스티안 코치(게로르그 드레이만 役)
"모두가 똑같은 신념을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사람들은 지위가 아닌 양심의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문화부 장관의 활동금지 협박을 받고 그가 한 말입니다.
예술이라는 것은 보통의 사고, 편견, 기준 등을 깨뜨려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고 그 결과물은 사회와 구성원들의 삶을 좀 더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동서독 국민들이 일정 조건에서 자유왕래와 각종 교류가 가능하던 시절이었지만 동독은 여전히 사회주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은 감시의 대상이 되고, 창작활동은 양날의 검처럼 위험천만한 일이 되버렸습니다. 드레이만 역시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온전하게 누리지 못하는 것을 개탄합니다.
비슬러는 드레이만의 집에 도청과 각종 장치를 설치합니다.
그의 사생활은 완전하게 비슬러에게 노출됩니다. 그러나 비슬러가 조국을 위해서 하는 일이 사실은 드레이만의 아내를 탐하던 부패한 권력가의 탐욕으로 시작되었다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드레이만 집에서 '브레히트'의 시집을 몰래 훔쳐 와서 읽게 됩니다.
우리들 위에는 아름다운 여름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한 무리의 구름을 보았을 때
그 구름무리는 매우 희었고 무척이나 높이 있었다.
그리고 구름에서 눈을 떼었을 때 그 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중 7년간 활동금지를 당했던 위대한 연출가 예르스카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 피아노 선율에 비통한 마음을 담아내던 드레이만의 음악소리가 도청 중이던 비슬러의 마음으로 전이되는 경험을 합니다. 영화에서 이 부분은 비슬러의 변화를 예감하게 하는 중요 장면이었습니다. 그후 다른 사람과 교대하고 밖으로 나오면서 드레이만의 집을 보며 뒷걸음으로 걷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비슬러의 심리적 변곡점으로 보이더군요. 사실 비즐러가 詩를 읽기 전에 창녀를 집으로 불러들여 성적욕구를 해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혹시 창녀를 통해 성적욕구가 배설된 자리에 인간의 감성을 깨우는 詩가 스며들면서 그가 원하는 평등의 세계로 돌아가는 뒷걸음은 아니었을까요?
이 영화는 세상의 변화는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즐러는 비록 비밀경찰로서 국민들을 감시하지만 자신만의 평등 원칙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므로해서 기회주의자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자신의 원칙 속에 배어있는 최소한의 양심에 귀를 기울였던 비즐러. 결국 그토록 자신이 사랑했던 조국의 변화를 당당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더불어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흔히 인간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다고 합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각 분야의 리더라는 인간들 중 일부는 살기좋은 세상을 위해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살인, 강간, 폭력, 사기, 절도 그리고 정치적 보복 등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이유가 정치적 정적을 포함한 대다수 국민들이 아직 개조되지 못한 것이라고 믿으며 권력을 부당하게 이용해서 억압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빌어먹을 환경을 자기들이 만든다는 사실은 관용의 대상으로 삼고서 말입니다.
그러나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언급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다만 이 영화의 모든 것은 비즐러의 마지막 대사에 함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타인을 통해 변화된 자신의 삶이지만 결국 선택은 비즐러 자신이 했다는 점에서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표정으로 큰 감동을 느끼게 되실 것입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반드시 봐야할 영화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영화 속 대사처럼 사람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족속들이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집을 통해 비즐러가 동요되었던 것 처럼 영화 한편으로 인간이 붉은털 원숭이로 진화될지도 모릅니다. 기적은 늘 우연을 가장해서 일어나니까요. 참! 이 영화의 감독은 '플로리안 헨켈 폰 더너스마르크'라는 사람인데 이 영화가 첫번째 장편영화랍니다. 멋진 영화를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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